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번역

2019. 7. 2. 01:32영문학

그의 마음은 걸어 둔 비파, 대기만 해도 둥둥 울리네.
- 드 베랑저

그 해 가을 어느 날의 일이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무겁게 내리덮여 온종일 흐리고 어둡고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다. 나는 홀로 하루 종일 말을 달려 이상하게도 황량한 시골길을 지나,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야 겨우 음침한 어셔 저택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저택을 한 번 바라본 순간부터 견딜 수 없는 침울한 기분이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견딜 수 없다고 한 것은 그 침울함의 정도가, 황량하고 무서운 자연의 경치라도 늘 시적이며 얼마쯤 유쾌하게 받아들여지는 여느 때 감정으로도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앞에 펼쳐진 경치를-다만 한 채의 저택과 그 언저리의 보잘것없는 풍경, 황폐한 담, 멍하니 크게 뜬 눈처럼 보이는 창, 몇 줄의 사초더미, 몇몇 썩은 나무의 흰 줄기들을-무어라 말할 수 없는 침울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그때의 내 기분은 마치 아편 중독자가 아편 기운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달콤한 꿈이 깨지는 듯한 기분 - 현실로 또다시 돌아올 때 느끼는 비통한 타락의 느낌, 지붕을 덮은 장막이 머리 위로 무시무시하게 떨어질 때의 절망감, 그것 말고는 이 세상의 어떤 감정에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음속이 얼음처럼 싸늘해지고 기운이 쭈욱 빠지며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무리 강렬한 상상력을 펼쳐도 도저히 밝은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적막감이었다.
나는 숨을 돌리며 생각했다.
'웬일일까?'
어셔 저택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이토록 어지럽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으며, 그것을 생각하는 동안 수없이 몰려드는 어두운 환상들을 쫓아낼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아주 단순한 자연의 물상들이 엉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같이 우리들을 괴롭히는데도, 그 힘 그 자체를 분석하는 것은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불만스러운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하나의 경치나 또는 그림을 좀 다르게 배열해 보면 얼마쯤 슬픈 인상을 주는 힘을 융화시키거나 아주 없앨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저택 옆의 잔잔한 수면 밑으로 시커멓고 무시무시하게 빛나는 늪이 있는 절벽으로 말을 몰고 가 그곳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회색 사초와 무시무시한 나무줄기와 멍하니 뜬눈 같은 창들이 재구성되어 거꾸로 물 위에 비치는 모습은 더욱 몸서리쳐지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이 음산한 저택에서 몇 주일간을 머물 예정으로 왔다. 이 저택 주인 로드릭 어셔는 내 어릴 때 친구였지만, 서로 헤어진 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 통의 편지가 먼 시골에 떨어져 살고 있는 나에게 - 어셔가 보낸 것이었다 - 왔는데 그 사연이 너무도 심각했으므로 내가 직접 와 보는 수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의 필적은 신경이 몹시 흥분 상태에 놓여 있음을 뚜렷이 드러내 주고 있었다. 그의 편지에는 몸이 몹시 쇠약해졌고 정신이상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그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뿐인 벗인 나를 만나 다정하게 대화라도 나눔으로써 얼마쯤이나마 병고를 덜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편지에 씌어진 이러한 사연과 그에 대한 사랑, 또 그의 간청과 아울러 표시된 그의 열성이 나에게 머뭇거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무척이나 이상한 초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대번에 받아들였다.
우리는 어렸을 때 무척 친한 사이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 게 없었다. 그는 말수가 무척 적은 편이었다.
가문의 내력이 긴 그의 집안은 오랜 옛날부터 아주 민감한 성품의 사람들로 유명했으며, 그 기질은 대대로 많은 우수한 예술품이 되어 나타났고, 최근에 와서는 너그러우면서도 겸허한 자선사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 그의 집안 사람들은 음악에 있어서도 정통적으로 알기 쉬운 음계보다 오히려 복잡한 음에 대해 열렬한 열정을 나타내고 있다.
어셔 집안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든 한 번도 오래도록 뻗어나간 분가를 내놓지 못했다. 모든 일족이 직계이며, 아주 하찮은 일시적인 변천은 있었지만 언제나 그러했다는 특기할 만한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왠지 저택 모습의 특징이 세상에 알려진 가족의 특징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느끼고 몇 세기라는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그 모습이 가족들에게 끼쳤을 영향을 추측해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집안에 분가가 없다는 결점과 아울러 집안 이름과 상속재산이 대대로 변함없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전해지는 사실이 결국은 이 둘을 같은 것으로 해 버려서 어셔 집안이라는 기묘하고도 애매한 명칭 - 이 명칭을 쓰고 있는 농부들은 그 명칭 속에 가족과 건물이 함께 포함되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듯 보였다. - 속에 그 집안 본래의 명칭을 혼돈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좀 어리석은 경험 - 늪 속을 들여다본 것 - 이 내가 느낀 맨 처음의 기괴한 인상을 더욱 강하게 해 주었다는 것은 앞서도 마란 바와 같다. 물론 나의 미신이 - 미신이라고 불러서 안 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갑자기 강해졌다는 착각이 도리어 그 미신을 더욱더 강하게 믿게끔 한 것은 사실이다. 나의 오랜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일이지만, 공포의 모든 감정은 모두 이와 같이 모순된 경로를 밟는다.
그리고 내가 늪 속에 비친 저택의 그림자로부터 눈을 들어 실제 저택을 쳐다보았을 때, 내 마음속에 이상한 공상이 - 사실 싱겁기 짝이 없는 공상이었으므로, 다만 그때 나를 괴롭혔던 감각의 위력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 선뜻 머리에 떠오른 것도 어쩌면 이런 까닭에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멋대로 이리저리 궁리해 본 결과, 저택과 그 언저리의 특유한 대기 - 하늘의 대기와는 딴판인 썩은 나무와 흰 벽과 잠잠한 늪으로부터 증발된 대기 - 희미하고 완만하여 겨우 그 속의 사물을 알아볼 수 있는, 우중충한 빛깔을 띤 독기어린 증기가 집 주위를 떠돌고 있다고까지 믿게 되었다.
아무래도 악몽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이러한 망상을 내 마음속으로부터 쫓아내 버리려고 나는 더 한층 자세히 저택 모양을 살펴보았다.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것이 그중 뚜렷한 특징이었는데, 오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건물은 퇴락한 듯했다. 겉은 온통 무성한 곰팡이로 뒤덮여 그것이 섬세하게 뒤얽힌 거미줄처럼 추녀 끝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의 황폐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주춧돌의 어느 부분도 허물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손질을 한 완전한 부분과, 퍼석퍼석 바스러진 한 개 한 개 쌓아올린 돌 사이에 큰 부조화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모양은 사용되지 않은 채 오랫동안 광 속에서 썩어 버린 겉모양만 번드르르한 낡은 세목공의 겉을 보는 것 같은 연상을 나에게 불러일으켰다.
이같이 이것저것 모두가 황폐한 빛을 띠고 있었지만, 집이 넘어질 염려는 없어 보였다. 더욱 조심해서 바싹 들여다보니 눈에 띌까말까한 균열이 건물 앞쪽 지붕으로부터 담까지 꾸불꾸불 내려와 늪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게 보였다.
이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포석이 깔린 짧은 길을 지나 저택 쪽으로 말을 몰았다. 기다리고 있던 하인에게 말고삐를 건네주고는 고딕 풍 현관의 아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발소리를 죽이며 걷는 하인이 아무 말 없이 몇 개의 어둠침침하고도 복잡한 복도를 지나 주인의 서재로 나를 안내했다.
도중에서 눈에 띈 여러 건물들은 내가 이미 말한 그 적막감을 한층 더 강하게 해 주었다. 주위의 물건들 - 천장의 조각, 벽에 걸려 있는 어둠 침침한 벽모전, 마루의 꺼먼 흑단, 또는 발을 옮길 때마다 덜컥거리는 환형을 새겨넣은 것 같은 문장의 전리품 갑옷 등, 어렸을 때부터 내 눈에 익어온 이러한 물건들이 새삼스레 기이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어느 층계에서 나는 이 집안의 주치의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경험에서 오는 교활함과 당황의 표정이 반반씩 감돌고 있었다. 그는 당황한 태도로 나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 버렸다. 얼마 안 되어 하인은 어느 방문을 열고 나를 그의 주인 앞으로 안내했다.
내가 들어간 방은 굉장히 넓고 천장도 높았다. 창문들은 길고 좁고 뾰죽했는데, 그것은 시커먼 떡갈나무 마루로부터 높이 떨어진 곳에 나 있어 방 안에서는 좀처럼 거기까지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느다란 진홍빛이 격자창으로 흘러들어와 그런 대로 주위에 떠오르는 것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먼 방 쪽의 구석과 반원형의 완자무늬로 장식한 천장 구석 쪽은 보이지 않았다. 벽에는 칙칙한 벽모전이 걸려 있고, 가구는 대체로 지나치게 많으나 모두 우중충하고 낡아빠지고 무늬가 떨어져 있었다.
많은 책과 악기들이 어지럽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지만 방에 활기를 주지 못했다. 이것들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슬픈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엄숙하고 쓸쓸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침울한 기분이 방 안에 떠돌며 모든 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어셔는 온몸을 쭉 뻗고 누워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진정으로 나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만들어 낸 진심 - 인생에 대해 권태를 느낀 사람이 흔히 만들어내는 가면적 노력 - 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의 얼굴을 흘끗 쳐다본 순간 나는 그것이 진정한 열성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우리들은 앉았다. 그리고 잠시 그가 말이 없는 동안 나는 연민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그를 쳐다보았다. 로드릭 어셔처럼 짧은 시일 안에 이 같이 무서운 모습으로 갑자기 바뀌어 버린 사람도 드물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이 핼쑥한 남자가 오랜 옛날, 소년시절의 내 동무였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얼굴의 특징은 조금도 달라진 데가 없었다. 누런 얼굴빛, 크고도 부드러우며 유난히 번쩍이는 두 눈, 좀 얇고 핼쑥하지만 무척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입술, 우아한 헤브라이 형이면서도 그러한 형에서는 드문 콧구멍이 넓은 코, 잘생겼지만 쑥 들어간 탓으로 도덕적 정력이 부족해 보이는 턱, 거미줄보다 더 부드럽고 가느다란 머리칼 등의 갖가지 특징들과 함께 또 한가지, 귀밑 뼈 위쪽이 남달리 넓게 생긴 점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특이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김새의 주요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외모에 나타난 표정의 너무나도 커다란 변화가 내가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될 만큼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소름이 끼칠 만큼 핼쑥한 피부 빛깔이며 이상한 빛을 내는 그의 두 눈은 무엇보다도 나를 놀라게 하며 공포감마저 주었다. 비단결 같은 머리칼 역시 제멋대로 자라서 굵게 짠 명주처럼 얼굴 주위에 떨어져 있었는데 아니, 오히려 두둥실 떠 있다는 편이 좋을 형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아라비아 풍 용모를 여느 사람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곧 친구의 태도에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 있는 것을 대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이것은 습관적인 경련 - 극도의 신경 흥분 -을 억누르는 연약하고 쓸데없는 노력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하긴 이러한 것들은 그의 편지며 소년시절에 대한 회상, 그리고 그의 특유한 체질이며 기질로 미루어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긴 했지만.
그의 태도는 쾌활하다가도 갑자기 침울해지곤 했고, 목소리는 모든 것이 다 성가신 듯 부들부들 떨리다가도 갑자기 곤드레만드레가 된 주정꾼과 처치곤란한 아편 중독자가 몹시 흥분했을 때 버럭 지르는 그 급하고도 무게 있는 태평스러운 굵은 목소리 - 침울하고 침착하며 완전히 조절된 후음 -로 바뀌는 것이었다.
이러한 말투로 그는 나를 부른 목적과 나를 만나고 싶어한 그의 열망과 내가 그에게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위안들에 대해 대강 말한 다음 그의 병의 본질로 생각되는 점에 화제를 돌려 꽤 길 게 이야기했다.
그의 병은 유전적으로 내려오는 것이므로 치료 방법이 전혀 없어 단념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간단한 신경 계통의 병세에 지나지 않으니 틀림없이 곧 나을 것라고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의 병세는 많은 부자연스런 감각으로 나타나 - 그가 자세히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그 어떠한 감각이 어쩌면 그의 말투와 말하는 태도에도 적지 않게 관계가 있었겠지만 - 나를 재미있게도, 당황하게도 만들었다.
그는 병적인 과민성으로 무척 고통받고 있었다. 음식물은 아주 깨끗해야 했고, 옷도 일정한 빛깔의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꽃향기는 그 어떤 것이든 숨이 막혔고, 약한 빛에도 눈이 아팠다. 그리고 그에게 공포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특수한 어떤 음향뿐이었으며, 그것도 다만 현악기 정도였다.
그가 일종의 변태적인 공포에 늘 시달리고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는 말했다.
"나는 이런 통탄할 만큼 우스운 병으로 죽지 않으면 아니될 걸세. 그밖에 아무 까닭도 없이 나는 이 모양으로 죽어 버릴 것일세.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지. 비록 하찮은 사건이라도 그것이 내 영혼에 이런 참을 수 없는 충동을 일으킨다는 걸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네.
나는 위험 따윈 두려워하지 않아. 다만 공포를 일으키는 절대적 영향을 무서워하는 것일세. 이러한 기진맥진한 가련한 상태에 빠져 '공포'의 무시무시한 환영과 싸우는 동안 생명도 이성도 모두 내 버려야 할 시간이 머지 않아 꼭 올 것만 같아."
그 밖에도 나는 때때로 터져나오는 한 토막 한 토막의 애매한 암시로부터 그의 정신상태의 또 다른 기이한 특징을 발견했다. 여러 해 동안 살면서 한 걸음도 문밖에 나가 보지 않은 그의 저택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도 애매했기 때문에 여기서 또다시 설명하기에는 퍽 힘드는, 실제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어떤 힘의 영향 - 대대로 살아온 그의 저택 모습과 그 내적인 분위기가 오래 살아오는 동안 그의 영혼에 끼친 영향 - 회색 벽과 지붕의 작은 탑 또는 이 두 물체가 내려다보고 있는 어둠침침한 늪 수면이 마침내 살아 있는 그의 정신에 끼친 영향에 관해 그는 일종의 기이하고도 미신적인 착각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이 그에게 번민을 안겨 준 특수한 우울증을 대부분 보다 더 자연스럽고 알기 쉬운 근원 - 여러 해 동안 그의 유일한 친구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핏줄인 누이동생의 오랜 병과 그녀의 죽음이 확실히 눈앞에 닥쳐왔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또다시 머뭇거리며 고백했다.
"누이동생이 죽으면 내가, 절망적이고 허약한 내가 유서 깊은 어셔 집안의 마지막 살아남은 사람이 되는 것일세."
그 말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비통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바로 그때 메들라인 -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이 내가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용히 방 저쪽을 걸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공포감이 뒤섞인 큰 놀라움을 느끼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왜 그토록 놀라고 두려움마저 느꼈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저쪽으로 사라지는 발소리를 머리 속에서 쫓고 있는 동안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마침내 그녀 모습이 문 뒤로 사라져 버렸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어셔의 표정을 열심히 살폈다. 그러나 더욱더 야위어 버린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밖에 볼 수 없었다.
메들라인의 오랜 병에 대해서는 아무리 능숙한 의사들도 혀를 내둘렀다. 고질이 되어 버린 무감각증, 신체의 점진적인 쇠약, 짧은 동안이지만 빈번히 일어나는 부분적인 강직 현상 등이 그녀의 이상한 증세였다.
지금까지 그녀는 꾹 참으며 누우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와닿은 그날 저녁 무렵 - 어셔가 말할 수 없이 흥분한 말투로 그날 밤 내게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 끝내 명마의 무서운 힘에 쓰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때 슬쩍 쳐다본 모습이 마지막으로, 적어도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뒤 며칠 동안은 나도 어셔도 그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열심히 친구의 우울증을 위로해 주려고 애썼다. 우리들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책도 읽었다. 그리고 그가 즉흥적으로 격렬하게 뜯는 교묘한 기타 소리에 꿈꾸듯 귀기울이기도 했다.
이리하여 우리 두 사람 사이가 친밀해져 감에 따라 그는 자기 마음속을 보다 허물없이 털어놓게 되었는데, 그럴수록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는 나의 모든 노력이 헛일임을 더욱 비통하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으로부터 끝없는 어둠이, 마치 선천적으로 타고난 확고한 본질과도 같이 모든 물질과 마음의 세계 위에 우울하게 끊임없이 방사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어셔 집안 주인과 단둘이 지낸 그 수많은 엄숙한 시간들의 기억은 영원히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내가 어떤 연구를 했고 또 어떤 일에 골몰했는지, 그리고 그가 나에게 무엇을 당부했는지는 아무래도 도무지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흥분된, 본성을 잃은 극도의 상상력이 모든 것 위에 인광과 같은 퍼런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가 만든 몇 편의 긴 즉흥 비가만은 언제까지나 내 두 귀에 쨍쨍 울릴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도 폰 베버(독일 작곡가)의 마지막 왈츠, 그 격렬한 음조에 그가 덧붙인 기묘한 전곡과 변곡이 마음 아프게도 내 가슴에 되살아나곤 한다.
치밀한 공상에서 시작되어 한 붓 한 붓 칠해 나감에 따라 더 한층 몽롱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그림은 웬일인지 무척 무서웠다. 이 그림은 아직까지도 내 눈앞에 뚜렷이 아물거리지만, 여기서는 도저히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극도의 단순성과 그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는 점이 보는 사람의 주의를 끌며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만일 어떤 하나의 사상을 그림에 정확하게 나타낸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 로드릭 어셔이리라. 적어도 나에게는, 그때 나를 둘러싸고 있던 환경 속에서 이 우울병자가 캔버스 위에 그리려고 애쓴 순수한 추상 관념으로부터 프겔리(스웨덴 화가)의 그 타오르는 듯하면서도 구체적인 환상화를 조용히 내려다보았을 때에도 느끼지 못했던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어셔의 환상적 그림 가운데 희미하게나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한 장의 소품으로, 그 안에는 평평하고 아무 변화도 장식도 없는 긴 벽이 있었고 끝없이 긴 장방형 천장과 동굴 안이 그려져 있었다. 의도적으로 굴을 땅바닥보다 썩 낮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넓은 안쪽의 어느 곳에도 문이 없고, 횃불 또는 인공적인 빛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넘칠 듯한 강렬한 빛이 방 안에 충만하여 모든 것을 무섭고 이상한 광휘 속에 똑똑히 드러나게 하고 있었다.
어셔의 병적인 청신경이 현악기를 뺀 다른 악기 소리는 참을 수 없을만큼 그를 괴롭혔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이같이 제한된 좁은 범위 안의 곡목으로만 그가 기타를 연주했다는 것은 도리어 기이한 특징을 주었다.
그러나 그가 흥에 겨워 즉흥적으로 작곡해 내는 그 재주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의 환상적인 곡이며 가사 - 그는 가끔 기타를 뜯으며 운율적 즉흥시를 읊었다 -는 최고의 예술적 감격에 취했을 순간에나 볼 수 있는 강렬한 정신적 통일과 집중의 소산이었다.
이러한 즉흥 시의 한 구절을 지금 나는 쉽사리 욀 수가 있다. 그가 읊은 그 즉흥 시에 내가 더욱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그 시의 의미 속에서나 그 신비로운 흐름 속에서 어셔가 그의 옥좌 위에서 자기의 고고한 이성이 비틀거리는 것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읊은 <유령궁>이라는 시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대략 다음과 같았다.

푸른빛 짙은 골짜기에
천사들 깃들여 살던
아름답고 웅장한 궁정,
빛나는 궁전 우뚝 솟아 있도다.

'사상'의 제국에
거기 궁전은 솟아 있노라!
천사도 이같이 아름다운 궁전에는
내려온 적 없으리라!

노랗게 빛나는 황금빛 깃발들
지붕 위에 휘날렸도다.
'이는 모두 아주 먼 옛적'
그리운 그날
엄숙하고 창백한 보루를 스쳐
솔솔 부는 부드러운 바람
향기로운 깃을 달고 살며시 스쳤노라.

행복의 골짜기를 헤매는 방랑의 무리들
빛나는 두 개의 창으로부터
은은히 들리는 비파 소리에 따라
춤추며 옥좌를 돌고 도는
신들을 보네.
옥좌에는 남빛 옷 입은 하늘나라 임금!
그럴 듯한 위엄을 띠고
하늘나라 임금, 내려오심이 보이도다.

아름다운 궁전의 문은
진주와 루비 빛으로 비치고
그 문으로 흐르고 흘러
또 영원히 번쩍이는
산울림의 무리 뛰어들어오도다.
세상에도 드문 아름다운 소리로
임의 크신 공덕을
친미함을 오직 하나의 의무로 삼고.

악마들은 슬픔의 옷을 입고
하늘나라 임금의 옥좌를 부수었도다.
'아, 슬프도다,
하늘나라 임금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
궁터에 떠도는
빨갛게 피어오른 영광도
이제는 다만 묻힌
남은 옛추억의 한 줄기.

골짜기를 지나는 여행자 무리들
이제는 다만
빨강빛 비치는 창으로부터
미친 듯 터져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희미하게 흔들리는 커다란 그림자를 볼 뿐
무서운 급류와도 같이
파리한 문을 지나
괴물의 무리 영원히 터져나와
큰 소리로 웃는다.
미소는 벌써 볼 수도 없구나.

지금도 머리 속에 똑똑히 남아 있지만, 이 짧은 시가 준 암시는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마침내는 어셔가 지닌 견해까지 뚜렷이 알 수 있게 했다. 그 견해는 - 신기하기 때문이기보다(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이 그 외에도 또 있었다) 그가 거기에 너무도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이지만 - 모든 사물이 감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무질서한 공상 속에서 이 같은 생각은 일단 더 대담하게 되고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는 무기체에까지도 적용된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의 모든 신념과 열성을 표현할 수도 없으나, 그 신념 - 앞에서도 잠깐 암시했지만 -은 선조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이 집의 잿빛 돌담과 무슨 관계가 있는 듯싶었다.
그런 것이 감각성을 지닌 증거는 주춧돌이 배열된 양식에 있다고 그는 상상했다. 돌 또는 돌들을 덮고 있는 수많은 곰팡이며, 돌담 가까이 서있는 썩은 나무들의 배열순서 - 특히 이 순서가 오랫동안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과 그 자태가 늪의 고요한 물 위에 되비치고 있다는 사실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는, 즉 감각성이 있다는 증거는 물과 벽 가까이 있는 대기가 저절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굳어지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 이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여러 세기 동안 그 저택의 운명을 좌우하고, 또 자기를 이러한 인물로 만들어 버린 것은 그 어둡고 무서운 힘의 결과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그리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책의 경우도 - 여러 해 동안 이 환자의 정신생활을 대부분 지배해 온 책 - 물론 이러한 환상적 생활에 꼭 알맞는 것들 뿐이었다. 그레세(프랑스 시인)의 <베르베르와 샤르틀즈(베르베르는 수도원 수녀와 앵무새 이야기, 샤르틀즈는 캘빈 파 교회 이야기를 쓴 시)>, 마키아벨리의 <벨프고르>, 스베덴보리(스웨덴의 신학자며 철학자)의 <천국과 지옥>, 홀베르그(덴마크 극작가)의 <니콜라스 클림의 지하여행>, 로버트 플러드(영국의 의사며 신학자), 장 댕다지네(16세기 독일의 신부), 드 라 샹브르 등의 <손금법>, 티크(독일의 시인이며 극작가)의 <창공의 여행>,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를 우리들은 탐독했다.
도미니카 파 신부 에이메릭 드 지롱느(스페인의 종교 재판관)의 소행 8절판 <종교 재판법>도 우리가 즐겨 읽는 책 가운데 하나였으며, 폼포니우스 멜라(서기 43년 즈음의 로마 지리학자)의 작품 가운데 고대 그리스의 사튀로스(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양의 다리를 가진 산신) 또는 이지판(빵을 주는 신, 그리스 어로 산양이라는 뜻)에 관한 부분은 어셔가 몇 시간이고 꿈꾸듯 취해 탐독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심취해서 탐독한 책은 4절 고딕 서체판의 진귀한 책 <메인츠 교회 성가대에 의한 사자에게 드리는 밤샘 기도>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 책에 기록된 광포한 의식과 그것이 이 우울병자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그는 누이동생 메들라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고 - 마지막으로 매장하기 전에 - 2주일 동안쯤 시체를 안방 벽 뒤에 있는 지하실 속에 가매장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런 별난 방법을 취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내가 반대할 만한 성질의 것이 못되었다. 죽은이가 앓았던 병의 이상한 성질과 의사들이 어떤 사실을 주제넘게 꼬치꼬치 캐물을 일, 또 가족 묘지가 멀고 황폐한 것 등을 고려해서 이렇게 정한 것이라고 어셔는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이 집에 온 첫날 층계에서 본 그녀의 불길한 생김새를 떠올려볼 때, 조금도 해로울 것도 부자연스러울 것도 없는 조처라고 생각되는 이 방법에 반대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어셔의 간청으로 나는 이 가매장 준비를 직접 도와주었다. 시체를 관에 넣은 다음 우리 둘은 관을 메고 가매장할 곳으로 갔다.
우리가 관을 내려놓은 지하실 - 너무도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탓으로 손에 든 횃불의 연기와 숨이 막힐 듯한 공기에 반 질식되어 도무지 주위를 분간할 수 없는 -은 좁고 축축하며 빛 한 줄기 들어올 틈조차 없는 곳으로, 내 침실 바로 밑의 꽤 깊은 곳에 있었다.
먼 옛날 봉건시대에는 지하 감옥으로 쓰였고, 그 뒤에는 화약이나 또는 그와 같은 불붙기 쉬운 물질의 저장소로 쓰인 듯 마루의 한쪽과 우리들이 들어온 아치 문 내부가 빈틈없이 동판으로 싸여 있었다. 큰 철문도 그러했다. 그 철문은 무척 큰 무서운 돌쩌귀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이 슬픈 짐을 무시무시한 방 안에 마련되어 있는 안치대 위에 올려놓고 우리들은 못박지 않은 관 뚜껑을 한쪽만 살짝 열고 죽은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이 두 남매의 얼굴이 너무도 꼭 닮은 데 주의가 끌렸다. 내 마음속을 짐작했던지 어셔도 뭐라고 몇 마디 중얼거렸는데, 나는 그의 말에서 그들이 쌍둥이었으며, 그들 사이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교감이 늘 존재했음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들은 오랫동안 이 시체를 내려다보지는 않았다. 무서워서 내려다볼 수가 없었다. 꽃 같은 청춘 시절에 그녀의 생명을 빼앗아가 버린 병은, 강직 현상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증세로써 가슴과 얼굴에 아직도 희미한 붉은 점을 남겨놓았고, 입술 위에는 죽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무섭고 끔찍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우리는 뚜껑을 맞추어 못을 박은 뒤 철문을 꼭 닫고, 겨우 토굴과 다름없는 음침한 그곳에서 위층 방으로 돌아왔다.
이럭저럭 슬픈 며칠이 지나가자 어셔의 신경병 증세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의 여느 때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리고, 여태까지 하던 일도 등한히 여기거나 잊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는 걷잡을 수 없이 바쁘게 비틀거리며 아무 할 일도 없이 괜히 이 방 저 방으로 돌아다녔다. 파리한 얼굴은 더 한층 무섭게 핼쑥해지고, 눈은 썩은 생선처럼 아무 윤기도 없었다. 그의 쉰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고 극도의 공포에서 나오는 듯한 떨리는 소리가 그 목소리의 특징이 되었다.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는 그의 마음은 아마도 어떤 참을 수 없는 비밀과 맹렬히 싸우며 그것을 고백하기에 필요한 용기를 지금 찾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했다. 또 어떤 때에는 환상에 쫓기는 미친 사람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행동도 했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도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귀기울이고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러한 어셔의 행동은 나에게 공포감을 주었고 마침내는 나에게까지 그 기분이 전염되었다. 나는 어셔 자신의 환상적이면서 인상깊은 미신의 무서운 영향이 점점 그리고 확실히 나에게로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런 느낌을 특히 강하게 받은 것은 메들라인을 지하실에 가매장한 뒤 7,8일째 되던 날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다. 잠은 내 침상으로 찾아와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동안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나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신경과민증을 이성으로 이겨보려고 애썼다.
내가 느낀 것은, 전부는 아니지만 그 대부분이 방 안의 침울한 가구 - 스며들어오는 바람을 받아 벽 위에서 건들거리며, 침대 장식 부근에서 바스락바스락 음침하게 흔들리는 컴컴하게 빛바랜 벽모전의 정체모를 영향에서 온 것이라고 구태여 믿어보려 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에 번져 마침내는 까닭모를 공포의 악마가 괴롭게도 내 심장을 꽉 눌렀다.
헐떡거리며 애써 이 공포를 박차 버리고 나는 겨우 베개 위에 몸을 일으켜 방 안 어둠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 나의 본능이 이렇게 시켰다는 것밖에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 폭풍우가 그친 뒤 한참 있다가 알지 못할 곳에서 들려 오는 나지막하고 막연한 소리에 귀기울였다. 무언지 알 수 없지만 참을 수도 없는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나는 갑자기 옷을 걸치고 - 잠이 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이 처참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썼다.
이러한 모습으로 방 안을 두서너 번 오락가락했을 때 바로 문 밖 층계를 올라오는 듯한 가벼운 발소리가 문득 들려 왔다. 나는 곧 어셔의 발소리임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 그는 가볍게 내 방문을 두드리더니 한 손에 램프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빛은 여전히 시체같이 핼쑥했지만 두 눈에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기쁨의 빛이 떠돌고, 온몸의 거동에서는 확실히 히스테리 발작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한 기색이 보였다.
나는 그의 태도에 놀랐지만 그때까지 참고 있었던 적막감에 질려 있었으므로 하늘이 돌보신 듯 그가 온 것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잠시 그는 주위를 휘 둘러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그럼, 자네는 그것을 못 보았나? 그것을 보지 못했어? 가만히 있게, 보여 줄 테니."
그리고 조심스럽게 램프를 가려놓은 다음 창문 쪽으로 달려가 창문을 하나 활짝 열어젖혔다.
갑자기 불어들어온 폭풍은 거의 우리 두 사람을 날려보낼 듯했다. 폭풍이 온 하늘을 뒤흔들고 있었지만, 그날 밤은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밤 - 공포와 아름다움이 뒤섞인 이상한 밤이었다.
회오리바람은 확실히 이 집 언저리에 세력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바람은 시시각각 맹렬한 기세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으며, 지붕 위의 작은 탑을 짓누를 듯 얕게 내리덮인 안개도 구름들이 사방에서 서로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어 부딪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구름들은 그러면서도 서로 멀리 달아나거나 흩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달이나 별이 떠 있던 것도 아니고, 또 천둥이 치거나 번개가 번쩍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삼라만상은 물론 바람에 흔들리는 수증기의 커다란 덩어리 아래쪽까지도, 집을 둘러싸고 떠도는 희미한 가스체의 방사 광선을 받고 있었다.
창으로부터 조심스럽게 그러나 억지로 어셔를 끌어다 앉히며 나는 말했다.
"안 돼, 이런 것을 봐선 안 돼. 자네를 괴롭히는 이러한 경치는 어디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전기 현상에 지나지 않네. 또는 늪의 썩은 독기가 발산되는 것일지도 몰라.
자, 창문을 닫게! 바람이 차가워서 자네 몸에 해로울 테니까. 여기 자네가 좋아하는 한 권의 소설이 있네. 자, 내가 읽어 줄 테니 듣고 있게. 그리고 이 무서운 밤을 같이 보내기로 하세."
내가 손에 든 한 권의 옛 서적은 랜슬럿 캐닝 경의 <어지러운 회합(지은이와 작품 모두 포우 자신이 가공적으로 만들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농담으로 어셔가 즐겨 읽는 책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의 미숙하고도 비상상적인 이야기에는 그의 고상한 영혼의 이상에 감흥을 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손 가까이 있던 책이 이것뿐이었으므로 혹시나 이 우울증 환자의 흥분이 내가 이제 읽으려는 싱거운 이야기에서라도 좀 가라앉지나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머리에 떠올랐다 - 이러한 좀 색다른 것도 어떤 때에는 정신이상자의 마음을 가라앉게 할 수 있으니까.
사실 내가 읽는 이야기에 그가 귀를 기울였고, 분명 긴장하여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귀담아듣는 듯한 태도로 미루어 내 계획은 일단은 성공한 듯싶었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에들레드가 은자의 집에 들어가려고 공손히 그가 찾아온 뜻을 말했으나 받아 주지 않으므로 마침내 폭력으로 침입하려는 그 유명한 구절에 이르렀다.

"......천성이 용맹스러운 에들레드, 들이킨 술기운으로 고집스럽고도 짓궂은 자와 이 이상 더 담판해도 소용없음을 깨닫고, 마침 그때 빗방울이 뚝뚝 떨어져 폭풍우가 일어날 기세를 보인지라, 선뜻 쇠메를 들어 문 널빤지를 몇 번 후려갈기니 순식간에 수갑찬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기더라.
구멍에 손을 틀어넣고 닥치는 대로 잡아채며 꺾고 분지르니, 바짝 마른 널빤지 깨지는 소리 하늘에 진동하며 방방곡곡 미치더라......"

이 구절 끝까지 읽었을 때 나는 깜짝 놀라 숨을 멈췄다. 그때 - 흥분된 공상이 나를 속인 것으로 추측은 했지만 - 저택 안 먼 구석으로부터 랜슬럿 경이 그토록 자세하게 묘사한 그 찢어발기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았다. 창문틀이 덜커덕대는 소리며 아직까지도 계속해서 불어오는 요란한 폭풍 소리에는 확실히 내 주의를 끌어 마음을 산란케 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읽어나갔다.

"......용사 에들레드가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흉악한 은자는 꼬리도 보이지 않으므로 버럭 화가 나고 한편 놀랐다.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은자는 없고, 비늘이 번쩍이고 불타는 듯한 혀를 가진 어마어마한 용 한 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은마루 깔린 황금 궁전 앞을 지키고 있더라.
벽에는 찬란한 놋쇠 방패가 걸려 있고, 그 속에 이런 명이 세겨졌다.

여기 들어온 자는 정복자니라.
용을 죽이는 자는 이 방패를 가져라.

그것을 본 에들레드, 쇠메를 들고 용의 머리를 내리치니 용은 그 앞에 푹 쓰러져 독기를 내뿜으며 울부짖더라. 그 음침하고 무서운 소리는 귀를 꿰뚫을 듯, 장사 에들레드도 그 소리에는 그만 두 손으로 귀를 막더라. 참으로 이러한 소리는 전대미문이라 하겠으니......"

여기서 나는 갑자기 또다시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 순간 - 어디서 들려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 확실히 먼 곳에서 낮게 들려 오는 날카롭고 길 게 외치는 듯하면서도 애원하는 듯한 소리 - 이 소설의 지은이가 그린 용의 기괴한 울부짖음이란 이런 게 아닐까 - 내가 상상하던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소리를 확실히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번째의 기괴한 우연의 일치에 몹시 놀라며 크나큰 공포를 느꼈지만, 어셔의 과민한 신경을 자극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여겨 꾹 참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어셔가 이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몇 분 동안 그의 태도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분명했다. 처음에는 나와 마주앉아 있던 그가 차츰 의자를 돌려 나중에는 방문 쪽으로 돌아앉게 되었고, 그 때문에 그가 뭐라고 중얼대는 것처럼 입술을 부들부들 떠는 게 보이긴 했지만 그의 모습 한부분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머리를 가슴에 푹 틀어박고 있었으나 얼핏 옆모습을 보았을 때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자고 있는 게 아닌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쉴새없이 일정하게 몸을 양옆으로 흔들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흘끗 바라본 다음 나는 그 책을 계속 읽었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이제 무서운 용의 격노를 벗어난 용사 에들레드, 그 놋쇠 방패를 생각하고 그 위에 씌어진 마력을 없애 버리려고 눈앞에 있는 용의 시체를 한쪽에 치워놓은 뒤 배에 힘을 주고 용감하게도 성의 은마룻바닥을 쿵쿵 울리며 방패 걸린 벽 쪽으로 달려드니, 그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놋쇠 방패는 쿵 하는 무서운 소리를 내며 장사의 발 언저리 마루 위에 떨어지더라......"

이러한 구절이 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자마자 바로 그때 놋쇠 방패가 정말로 은마룻바닥에 무겁게 떨어진 것 같은 뚜렷하고도 무서운 금속성이 눌러덮치는 듯한 울림이 들려 왔다. 나는 깜짝 놀라 급히 일어났다.
그러나 어셔의 태도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나는 그가 앉아 있는 의자로 달려갔다. 그의 두 눈은 뚫어지도록 앞을 바라보고 있고, 얼굴에는 돌 같은 엄숙한 빛이 떠돌았다.
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병적인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내가 있는 것도 모르는 듯 그는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뭐라고 급하게 중얼거렸다. 그에게 바싹 허리를 구부리고 나서야 겨우 그가 하는 말의 무서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저 소리가 안 들리나? 아냐, 들리네. 아직까지도 들리는 걸. 오랫동안, 오랫동안, 여러 분, 여러 시간, 여러 날 - 그 소리가 들렸어. 그러나 나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네 - 이 비참한 녀석을 가엾이 여겨 주게!
나는, 나는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한 거야! 나는 누이동생을 생매장해 버렸단 말일세! 내 감각이 날카로운 것은 자네도 잘 알겠지? 알겠나, 그 텅 빈 관 속에서 누이동생이 꿈틀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들려 왔네. 며칠 전에 벌써 그 소리를 들었어. 그러면서도 나는, 나는 감히 말을 못한거야!
그러나 이제, 오늘 밤 - 에들레드, 하! 하! 은자의 집 문이 터지는 소리, 용이 죽는 소리, 방패가 쿵 울리며 떨어지는 소리! 아니, 오히려 그것은 누이동생의 관이 터지는 소리, 지하실 철문의 돌쩌귀가 삐걱거리는 소리, 굴 속의 동판 깐 마룻바닥에서 그애가 기를 쓰는 소리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일세!
아! 어디로 달아나야 할까? 그애가 곧 이리로 오지나 않을까? 내 조급한 행위를 탓하러 달려오는 게 아닐까? 층계를 올라오는 그애의 발 소리가 들리지 않느냔 말야! 그애 심장이 무겁고도 무섭게 뛰는 것을 모를 줄 아나? 응, 이 미친 녀석아!"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갑자기 후닥닥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한마디 한마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녀석아! 누이동생이 이제 바로 문밖에 와 서 있어!"
어셔의 초인간적인 외침의 기세에 마치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가 가리킨 커다란 오래 된 벽판이 갑자기 무거운 흑단 한모퉁이를 서서히 뒤로 열어젖뜨렸다. 확 불어들어온 폭풍 탓이었겠지만.
그 문 밖에 수의를 몸에 감은 키크고 호리호리한 메들라인이 서 있었다. 흰 옷에 피가 묻었고 여인의 몸 군데군데에는 격렬한 몸부림의 자취가 역력히 보였다.
잠시 그녀는 문턱 위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러지러 비틀거리더니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방 안에 있는 오빠에게로 쾅 쓰러졌다.
격렬한 단말마의 고통으로 오빠를 마룻바닥에 내던지니, 그는 그만 시체가 되어 버렸다. 어셔는 그가 예기(豫期)하고 있던 바와 같이 공포의 희생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질겁하여 그 방으로부터 달아났다. 오래된 포석이 깔린 길을 건너고 있을 때 폭풍이 한층 더 심해져 사방을 온통 휩쓸었다. 갑자기 한줄기의 이상한 빛이 길 위에 번쩍였다.
어디서 이런 빛이 갑자기 흘러나왔을까 하고 나는 뒤돌아보았다. 내 뒤에는 다만 황량한 한 채의 큰 저택과 그 그림자밖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막 가라앉고 있는, 피가 흐르듯 새빨갛고 둥그런 보름달빛이었다. 달빛은 전에 내가 이야기한, 그전에는 보일까말까했던 벽의 갈라진 틈새로 밝게 비치고 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 갈라진 부분이 점점 넓어지더니 회오리바람이 한번 휙 불고 지나가자 달 모양이 갑자기 내 눈앞에 둥그렇게 나타났다.
거대한 벽이 무너지며 산산조각 쏟아져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머리가 아찔했다. 거센 파도 소리와도 같은 길고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내 발 밑의 깊고 어둠침침한 늪이 소리도 없이 음침하게 어셔 저택의 파편을 삼켜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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