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 01:13ㆍ영문학
이제 나도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직업의 성격상 나는 흥미 있고, 어떤 면에서는 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보통 이상의 접촉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지금까지 아무도 그들에 대해서 글을 쓴 일이 없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이란 바로 법원 필경사, 혹은 서기를 말한다.
직업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가지각색의 전기를 써서 점잖은 신사들을 미소짓게 만들고, 감상적인 독자들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법원 서기들의 전기는 전부 제쳐 두고, 내가 만난 서기들 가운데서, 아니 내가 이야기를 들어 본 서기들 가운데서 가장 기이한 존재인 바틀리라는 서기의 생애에 대해서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다른 법원 필경사들에 대해서라면 그 사람의 생애 전체를 쓸 수 있겠지만, 바틀비에 대해서만큼은 그런 식의 일이 불가능했다. 바틀비에 대해서 완벽하고 만족스러운 전기를 쓸 만한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기를 쓰는 데 치명적인 결점인 것이다. 바틀비는 기본적인 자료를 빼고는 다른 방법으로는 전혀 확인할 길이 없는 사람인데, 그릐 경우 자료가 너무나도 적었다. 나 자신도 경악하면서 목격한 사실, 그것이 내가 그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 전부이고, 그밖에는 한 가지의 막연한 소문이 존재할 뿐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추후에 차차 써 나가겠다.
내 앞에 처음 나타난 바틀비를 소개하기 전에, 우선 나 자신과 내가 고용하고 있는 사람들, 나의 직업, 사무실과 그 주변에 관한 것을 대충 소개해 두는 것이 일의 순서인 것 같다. 왜햐하면 지금부터 등장하려고 하는 주인공을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얼마간의 서술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첫째로, 나는 젊었을 때부터 인생은 될 수 있는 대로 편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는 신념을 굳게 지니고 살아온 사람이다. 따라서 내가 종사해 온 직업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많은 정력을 필요로 하고 짜증이 나고, 심지어는 위험한 고비 같은 것도 있었지만, 그런 고충 때문에 내 마음의 평화를 위협당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배심원 앞에서 열변을 토하거나, 또는 대중의 갈채를 이끌어내려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 야심이 없는 변호사로, 아늑한 방에서 차분하고 조용히 부자들의 공채, 양도 증서, 부동산 권리증 같은 것에 둘러싸여 실속 있는 사건들만 취급하고 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더할 수 없이 안전한 법률가라고 생각해다. 이미 고인이 된 존 제이콥 애스터는 --- 사실 그는 시적인 정열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 나의 첫번째 장점은 신중함이고, 두번째 장점은 착실함이라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언명했던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단순한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변호사로서 나도 고(故) 존 제이콥 애스터의 사건을 맡았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이름을 되풀이해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세련되고 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이름이고 황금을 연상시키는 울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 마디 덧붙이겠는데, 나는 고 존 제이콥 애스터의 칭찬을 무심하게 들어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조그만 이야기가 시작되기 얼마 전부터 우리 사무실의 업무량이 크게 증가하고 잇었다. 지금은 뉴욕 주에서 폐지되었지만, 옛날의 그 좋은 형평법원장 자리가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별로 힘이 드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꽤나 부수입이 많은, 실속 있는 지위였다. 나는 좀처럼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잘못된 일이나 억울한 일이 있어도 웬만해서는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 아니지만, 새로운 헌법에 의헤서 갑작스럽게 형평법원장 자리를 폐지한 폭거는 내가 보기에는 시기상조이므로 이번만은 그 경솔한 행동이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평생 덕을 볼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불과 2, 3년 짧은 기간밖에 그 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담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변호사 사무실은 월스트리트 XX번지의 2층에 있었다. 사무실은 빌딩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채광을 위해 넓게 뚫어 놓은 수직 공간 안쪽의 하얀 벽에 면해 있었다.
이 전망은 풍경화가가 말하는 '생기'가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단조롭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사무실 반대쪽에서 볼 수 있는 전망과는 적어도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쪽 창문에서는 어떤 방해도 없이 세월과 함께 흐려진, 그늘 속에 검게 치솟은 벽돌벽을 볼 수 있는데, 그 벽은 숨어 있는 갖가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데 쌍안경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으며, 어떤 근시안도 볼 수 있는 거리인 내 사무실 창가에서 10피트도 안 되는 곳까지 삐져나와 있었다. 주위에 있는 엄청나게 높은 고층 빌딩들 때문에, 그리고 내 사무실이 빌딩 2층에 있었기 때문에 이 벽과 사무실 벽 사이의 공간은 마치 거대한 사각의 물탱크와도 같았다.
바틀비가 출현하기 바로 얼마 전까지, 나는 두 명의 필경사와 장래가 유망한 한 소년을 급사로 고용하고 있었다. 그 첫번째가 '칠면조'이고, 두번째가 '펜치'이고, 세번째가 '생각 비스킷'이었다. 이것들은 이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인명부에서느 보통 찾아볼 수 없는 이름들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고용한 세 명의 필경사들이 자기네들끼리 서로에게 붙여 준 별명인데, 그들 각자의 인품과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한다. '칠면조'는 나하고 나이가 비슷한 --- 그러니까 거의 60세가 다 된 나이다 --- 키가 작은 땅달마간 영국인이었다. 아침나절이면 그의 얼굴은 불그레하니 혈색이 좋다고 할 수가 있었으나, 정오 12시 --- 그의 점심식사 시간이다 --- 가 지난 뒤에는 마치 크리스마스 날 석탄을 잔뜩 집어넣은 벽난로처럼 달아올라서 그 상태가 --- 그러나 그 불길은 서서히 약해진다 --- 오후 6시경까지 계속된다. 그후에는 이 얼굴의 소유자를 보지 못하게 되지만, 이 얼굴은 태양의 운행에 따라 빛의 정점에 다다랐다가 태양과 함께 가라앉는데, 태양과 같은 규칙성과 꺼지지 않는 영광을 가지고 다음날도 다시 떠올라서 극점에 이르렀다가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다.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무수히도 기묘하다는 우연의 일치를 겪어 왓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다른 것에 못지않은 것은 정확히 칠면조의 붉고 광채가 나는 얼굴이 최고의 빛을 발할 때, 그 바로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보기에는 24시간 중 그 나머지 시간의 그의 사무 능력이 심하게 저하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더할 수 없이 게으르다거나 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너무나 지나치게 정력적인 경향이 있는 것이 흠이었다. 그가 일하는 태도에는 이상스러운 성급함, 혼란스러움, 변덕스러움, 무모함 같은 것이 뒤섞여 있었다. 잉크 스탠드에 펜을 집어넣는 것조차 조심성이 없었다. 내 서류에 묻은 잉크 얼룩은 모두 정오 12시가 지나서 흘려진 것들이었다. 실제로 오후에 들어서면, 혼란스러워져서 서류에 잉크를 흘릴 뿐만 아니라, 어떤 날에는 더욱 심해져서 소란까지 피워대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그의 얼굴은 역시 마치 무연탄 위에 올려놓은 촉탄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의자로 불쾌한 소음을 내는가 하면, 잉크를 받아들이는 모래통을 뒤집어버렸다. 펜을 수선하려고 하다가는 자기 성질에 못이겨 산산조각을 내서 마룻바닥에 내동이쳤다. 그리고는 꼴사나운 모습으로 책상 위에 몸을 잔뜩 구부리고 서류를 뒤적이는 늙은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인물이었다. 정오 12까지는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빠르게,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능률적으로 대향의 사무를 처리해 냈기 때문이다 ---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그의 기행을 너그럽게 보아주려고 했지만, 때로는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잔소리를 해도 무척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오전 중에는 어느 누구보다도 예의가 바르고, 아니 누구보다도 근실하고 존경심으로 가득 찬 인간이, 오후만 되면 조금이라고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성급한 말대꾸를 --- 솔직히 말하면 무례한 말까지도 서슴지 않고 내뱉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오전 중의 업무 능력을 높이 사서 오랫동안 데리고 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지만 --- 그러나 동시에 12시 이후의 불안한 활화산과 같은 그의 태도에 불안을 느끼고도 있었다. 그래도 모든 것을 조용하게 모가 나지 않게 해결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내가 내 충고가 그에게서 꼴사나운 험악한 말대꾸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어느 토요일 오후(그는 토요일이면 한층 더 거칠어졌다)에 특별히 상냥한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 즉, 이제 당신도 나이를 많이 먹었으니까 업무량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간단히 말하면 12시 이후에는 사무실에 돌아올 필요가 없이, 점심식사가 긑나면 곧장 하숙집으로 돌아가서 차 마실 시간까지 쉬는 것이 좋지 않겠는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 된다고, 오후에도 계속 근무하겠다고 그는 우겨댔다. 만약 오전에 하는 일이 유용하다면, 그것이 어떻게 오후에는 필요없을 수 있겠느냐고 웅변적으로 나를 설득하러 들었을 때 --- 그는 사무실 반대편에서 기다란 자막대기를 흔들어댔다 ---- 그의 얼굴은 또다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실례지만, 형평법원장님" 하고 그날 칠면조가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법원장님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전에는 부하들을 집합시켜 배치를 할 뿐이지미나, 오후에는 내가 직접 선두에 서서 용감무쌍하게 적을 향해 돌격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요" --- 그리고는 자막대기를 힘차게 앞으로 찔러댔다.
"하지만 잉크 얼룩은 어떻게 하죠, 칠면조 씨?" 하고 나는 연상시켰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례지만 법원장님, 이 머리칼을 좀 보아주십시오! 나도 꽤 늙었습니다. 사실 따듯한 오후에 잉크를 한두 방울 흘렸다고 해서 흰머리의 늙은이를 이렇게 심하게 닦아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 비록 서류에 얼룩을 묻혔다 하더라도 --- 존중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실례지만 법원장님, 우리 두 사람은 똑같이 늙어가고 잇는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동류 의식에 호소하는 데는 나도 어떻게 저항해 볼 도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는 일찍 퇴근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도 지금까지처럼 그대로 일을 시키기로 마음먹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동안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서류들만 취급하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두번째 서기인 '펜치'는 구레나룻을 기르고 얼굴이 흙빛인, 언뜻 보아서는 해적 같은 인상을 주는 젊은이로 나이는 25세 가량 되었다. 나는 항상 그를 야심과 소화불량이라는 두 가지 사악한 힘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야심은 단순한 필경사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를 꺼린다든가, 예를 들어 법률 문서를 자기 손으로 집필하고 싶어하는 식의, 엄격하게 전문가만이 해야 할 일에 주제넘게 손을 대고 싶어하는 것 등에 의해서 잘 나타나 있었다. 한편 소화불량은, 자주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데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그것은 또 필경을 할 때 실수를 하면 옆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이빨을 가는 것의 원인이 되엇다. 그리고 일에 열중하면 말로 하기보다는 혀를 차면서 쓸데없는 욕지거리를 퍼붓고, 특별히 그가 일을 하고 있는 책상의 높이에 대해서 항상 불만을 털어놓는 것이 그 증거였다. 기계를 만지는 데는 매우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펜치는 결코 그 책상을 자신에게 맞도록 조절할 수가 없었다. 온갖 나뭇조각, 다양한 종류의 블록제, 골판지, 그리고 최후에는 압지를 접어서까지 다리 밑에 괴어 높이를 조절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어떤 발명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가령 등을 편하게 하기 위해 책상을 뚜껑을 그의 턱에 닿을 정도까지 가파른 각도로 높이고서 마치 네덜란드식 건물의 가파른 지붕 위에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자기 책상에서 필경을 하면, 그는 금세 팔의 혈액순환이 차단된다고 떠들어댔다. 또 이번에는 책상을 허리띠 높이로까지 낮추고 몸을 잔뜩 구부리고 필경을 하면, 금세 등이 쑤신다고 불평을 해댔다. 간단히 말한다면, 문제의 진상은 펜치가 그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은 무엇인가를 원하고 있다면 그것은 필경사의 책상 그 자체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의 병든 야심의 표현들 가운데는 그가 고객이라고 부르는 초라한 코트를 걸친 수상쩍게 보이는 사나이들의 방문을 즐겨 맞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펜치는 꽤나 알려진 구의회 의원일 뿐만 아니라 이따금 법원에서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맡고, 뉴욕 교도소 같은 곳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로 그를 찾아온 사나이가, 펜치가 우쭐거리면서 그의 고객이라고 우겨댄 사나이가, 빚쟁이 외에 아무도 아니며, 이른바 부동산 권리증이라는 것은 청구서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를 나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이 있는데도, 또 그가 여러 가지로 폐를 끼치는 데도 불구하고, 펜치는 동료이 칠면조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무척 도움을 주는 직원이었다. 그는 정확하고 빠르게 글씨를 썼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그는 신사로서의 행동거지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펜치는 언제나 신사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어서, 우연이기는 하지만 우리 사무실의 신용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에 반하여 칠면조의 경우, 그가 사무실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온갖 법석을 다 떨었다. 그의 옷은 기름때가 묻어 잇는 것처럼 보였고, 음식점 냄새가 났다. 여름이면 아주 크고 헐렁한 바지를 입었다. 코트는 보기가 흉하고 모자는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모자는 나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자는 영국의 고용인으로서의 천성적인 예의와 겸양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언제나 벗게 되어 있었지만, 코트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코트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를 여러 가지로 설득하였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사실은 그렇게 적은 수입을 가진 인간에게, 기름때가 묻은 얼굴과 기름때가 묻은 코트를 한꺼번에 동시에 바꾸라는 것은 애당초 무리인 것 같았다. 펜치가 언젠가 지적했듯이, 칠면조의 수입은 주로 붉은 포도주에 쓰여지고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나는 칠면조에게 내가 입던 아주 점잖게 보이는 코트를 한 벌 주었다 --- 패드를 넣은 회색 코트인데, 더할 수 없이 따스하고, 무릎에서 목까지 단추가 줄줄이 달려 있었다. 나는 칠면조가 그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여서 오후의 분별없는 짓과 소란스러운 행동을 삼가 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에게 그처럼 포근한 담요 같은 코트를 단정하게 단추를 채워 입게 하는 것은, 귀리를 너무 많이 먹이면 말에게 해로운 것과 같은 논리로 그에게도 유해하다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고집이 세고 난폭한 말이 귀리를 보고 날뛰는 것처럼 칠면조는 코트를 보고 날뛰었다. 코트는 그를 거들먹거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한 인간에게는 부(富)가 해로운 것이었다.
칠면조의 방종한 습관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펜치에 관해서는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결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그가 술을 마시지 않는 젊은이라는 점만은 높이 사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자연 그 자체가 그의 양조장이었는지도 모르고, 태어날 때부터 화를 잘 내는 브랜디 같은 기질이 철저히 주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진짜 술 따위는 필요없었는지도 모른다. 조용한 나의 사무실에서 이따금 펜치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넓이만큼 양팔을 잔뜩 벌린 채 책상 위에 몸을 기울이고, 마치 그 책상이 자신을 훼방놓고 짜증스럽게 할 의도를 가진 사악하고 심술궂은 악령이라고 되는 듯이 악에 바친 모습으로 그것을 이러저리 말고 다니는 광경을 보았을 때, 나는 펜치에게는 브랜디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펜치의 과민함과 그것에서 기인하는 신경질은 주로 소화불량에 그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대개 오전 중에 관찰할 수가 있었으며, 오후에는 비교적 조용했다. 반면에 칠면조의 주기적인 발작은 12시경에만 찾아오기 때문에 두 사람의 기벽을 동시에 당해야 하는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발작은 경비병처럼 서로 교대를 했다. 펜치가 보초를 설 때에는 칠면조는 비번이었다. 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 아래서는 하늘이 베푼 고마운 배열이었다.
세번째 배열인 '생강 비스킷'은 열두살 쯤 어린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짐마차의 마부인데, 자신이 죽기 잔에 아들이 짐마차 대신에 법정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주급 1달러로 우리 사무실의 법률 문하생 겸 사환 겸 청소부로 취직을 시켰던 것이다. 소년은 자기 소유의 작은 책상을 갖고 있었지만 별로 쓸 일이 없었다. 그 서랍을 한번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온갖 종류의 건과류 껍질이 잔뜩 들어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이 약삭빠른 소년에게 있어서는 고상한 법률학 전체가 그 호두 껍데기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생강 비스킷의 업무 중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함과 동시에 민첩하게 처리해 낸 일은, 칠면조와 펜치를 위해 과자나 사과를 조달하는 일이었다. 법률 문서를 베끼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므로, 두 필경사는 세관과 우체국 부근의 수많은 노점에서 사 온 사과로 빈번히 입을 축여 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생강 비스킷을 무척 자주 그 기묘하게 생긴 과자 --- 작고 납작하고 둥글고 무척이나 매운 --- 를 사로 보냈는데, 결국 그들은 그 과자의 이름을 그 소년의 별명으로 삼아 버렸다. 추운 날 아침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칠면조는 마치 그것이 웨이퍼[살짝 구운 얇은 과자]라도 되는 것처럼 십여개 씩 먹어 치우곤 했기 때문에 --- 노점에서 1페니에 6개나 8개씩 팔고 있었다 --- 펜을 긁적이는 소리와 입 안에서 비스킷을 와삭와삭 씹는 소리가 뒤섞여서 들려 왔다. 칠면조가 오후에 흥분해서 저지르는 경솔한 행동이나 실수들 가운데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언젠가 그가 생강 비스킷을 입술에 적셔서 그것을 저당 증서의 봉인으로 붙인 일이었다. 그때만은 나도 그를 정말로 해고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동양식으로 깊은 절을 하고, 이렇게 말함으로써 나의 예봉을 꺽어 놓았다.
"실례지만, 법원장님, 내 주머닛돈으로 당신의 인지대를 대신 냈으니까 나답지 않은 인심을 쓴 셈이라고요."
그런데 나의 본래의 업무 --- 부동산 양도 업무라든가, 권리 취득, 그밖의 모든 종류의 난해한 서류의 작성이라든가 --- 는 형평법원장 자리에 앉음으로써 엄청나게 불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필경사들의 일도 그만큼 불어났다. 이미 고용한 서기들을 다그치는 것도 필요했지만, 아무래도 새 서기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구인 광고를 보고, 어느 날 아침, 전혀 꾸밈새 없는 한 젊은이가 여름이라서 활짝 열어놓은 사무실 문턱을 들어섰다. 나는 지금도 그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가 있다 --- 핏기가 전혀 없는 창백한 단정함, 비참할 정도의 존경스러움, 구제할 길 없는 고독! 그것이 바로 바틀비였던 것이다.
그의 자격에 관해서 몇 가지를 물어본 뒤에 나는 그를 고용했다. 이와 같이 특별하리만큼 침착한 외관을 지닌 인물을 나의 '필경사 군단'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칠면조의 신경질적인 행동이나 펜치의 불같이 급한 성질에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는 더할 수 없이 기뻐했던 것이다.
미리 말을 했어야 하는 일이지만, 두 짝의 우윳빛 유리문이 우리 사무실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데, 한쪽은 필경사들이 쓰고 다른 쪽은 내가 쓰고 있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나는 그 문들을 열어놓기도 하고 닿아놓기도 했었다. 나는 바틀비에게 두짝문 바로 옆의 모퉁이, 그것도 내 방쪽에 자리를 정해 주기로 했다. 그것은 자질구레한 일이 생겼을 때 이 조용한 사나이를 손쉽게 불러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의 책상을 사무실의 옆 창문에 바짝 붙여놓게 했다. 본래 그 창문으로는 약간은 음침한 뒤뜰과 단조로운 벽돌벽을 곁눈질로 볼 수 있었는데, 그 뒤의 건물의 증축 탓으로 지금은, 얼마간의 밝은 빛이 비쳐들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창틀에서 3피트도 안 떨어진 곳에 벽이 들어서서, 빛은 두 개의 높은 빌딩 사이로 마치 원형 천장에 뚫린 아주 조그만 공간에서 비쳐드는 광선처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더욱 만족스러운 배열을 하기 위해서, 나는 접는 식으로 된 키가 높은 녹색 칸막이를 하나 사들였다. 그것은 바틀비를 나의 시야에서 완전히 차단시키기는 했지만, 내 목소리가 미치는 범위 안에 그를 두게 하는 이점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어떤 의미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사회성의 공존이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에 바틀비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필경을 했다. 마치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옮겨 쓰는 일에 굶주려 온 것처럼, 그는 나의 법률 기록을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워 버리는 것 같았다. 소화를 위한 휴식 같은 것도 없었다. 바틀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했는데, 낮에는 햇빛을, 밤에는 촛불을 의지해서 필경을 했다. 그가 즐겁게 부지런히 일을 했더라면, 나는 그의 근면함을 더할 수 없이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는 말없이 조용하게, 그리고 음침하게 기계적으로 베껴 나갔다.
한마디 한마디를 정확하게 베꼈는가를 비교 검토하는 것도 물론 필경사의 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업무였다. 한 사무실에 두 사람 혹은 그 이상의 필경사가 있는 경우에는 한 사람은 복사한 것을 낭독하고, 다른 사람은 원본을 비교하며 서로 검토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은 무척 따분하고 진절머리가 나고 맥빠지는 작업이었다. 다혈질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나도 쉽사리 상상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혈기왕성한 시인인 바이런이 바틀비와 마주앉아서 찌그러진 필체로 빽빽하게 쓴 5백 페이지나 되는 법률 기록의 대조를 꽤히 승낙해 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때때로 시간이 촉박한 서류인 경우, 나는 칠면조와 펜치를 불러나 놓고 나 자신이 직접 짧은 문서 같은 것을 대조하는 습관이 있었다. 바틀비를 가까운 칸막이 뒤에 있게 한 목적 중 하나도 이런 사소한 일을 할 때 부리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그가 우리 사무소에 출근한 지 3일째 되는 날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직 그 자신이 필경한 문서를 검토해 볼 필요는 없을 때였지만, 나는 그때 마침 취급하고 있던 작은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척이나 서두르고 있어서 급한 목소리로 바틀비를 불렀다. 서두르고 있었고, 또 그가 당연히 즉각 응답해 주리라고 믿고 잇었기 때문에, 나는 책상 위의 원본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서 복사할 것은 든 오른손을 신경질적으로 옆으로 쑥 내밀고 있었다. 은신처에서 달려나온 바틀비가 그것을 받아들고 잠시의 지체도 없이 일을 진향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와 같은 자세로 앉아서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빠른 말투로 그에게 시킬 일의 내용, 즉 짧은 문서를 나와 함께 대조할 것을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은신처에서 나오지도 않은 채, 바틀비가 이상하게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을 때, 나의 놀라움, 아니 아연실색하여 당황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잠시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앉아서 쇼크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가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바틀비가 내가 한 말을 완전히 다른 말로 착각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이번에는 아주 똑똑한 목소리로 지시 사항을 다시 되풀이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들려 온 것은 조금 전에 한 대답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고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흥분한 채 방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자네, 머리가 돈 것 아닌가? 나는 자네에게 여기 있는 이 서류를 대조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네 --- 자아, 받게." 하고 말하면서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바틀비를 쏘아보았다. 그의 여윈 얼굴은 태연했고, 회색 눈은 어둡지만 고요했다. 동요의 그림자조차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태도에서 조금이나마 불안이나 분노나 초조함 또는 불손한 빛이 보였다면, 즉 다른 말로 해서 그에게 보통 사람 같은 면이 있었다면, 의심할 것 없이 그를 사무실에서 우격다짐으로라도 내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는 키케로의 석고상을 사무실 밖으로 내던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그가 필경을 다시 계속하는 것을 응시하면서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다시 내 책상으로 돌아와 앉고 말았다. 정말 별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혼자 생각했다. 도대체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하던 일을 마무리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제는 지금 당장은 덮어두었다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다른 방에 있는 펜치를 불러서 서류의 대조를 빨리 끝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2, 3일 뒤, 바틀비는 4통의 긴 기록을 베꼈는데 그것은 나의 형평법원에서 행해진 일주일 간의 증언을 4통으로 작성한 것으로, 그것을 대조할 필요가 생겼다. 그것은 중요한 소송이어서 기록이 정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므로 나는 4통의 복사본을 4명의 필경사에게 각자 한 통씩 나누어 주고, 내가 원본을 읽으면서 대조해 나가기 위해 옆방으로부터 칠면조와 펜치와 생강 비스킷이 각자 손에 서류를 들고 한 줄로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이들 흥미 있는 그룹에 바틀비를 포함시키기 위해 그를 불렀다.
"바틀비, 빨리 오게! 자네만 오면 다 되네."
카펫을 깔지 않은 마룻바닥에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독방 입구에 그가 모습을 나타냈다.
"무슨 일입니까?" 하고 바틀비가 조용히 말했다.
"복사본 말일세. 복사본," 하고 나는 서둘러 말했다. "복사본을 대조하려는 거야. 이것은 자네 것일세" 하고 네번째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바틀비는 말하더니 칸막이 뒤로 점잖게 사라졌다.
얼마 동안 나는 '소금 기둥'으로 변한 채 필경사들이 앉아 있는 줄의 선두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는 칸막이로 다가가, 그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한 이유를 따지고 들었다.
"왜 거절을 하는 것인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당장 불 같은 격정에 몸을 내맡겨 울화통을 떠뜨려서 마구 욕지거리를 퍼붓고 사무실 안에서 내쫒아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에게는 이상하게도 나의 적의를 가라앉힐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당황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나는 이치를 따져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조하려고 하는 것은 자네가 필경한 서류들일세. 이것은 자네의 수고를 덜어 주는 일이란 말이지. 왜냐하면 단 한 번으로 자네가 베낀 4통의 서류를 모두 대조할 수가 있으니까. 이것은 어디서나 모두들 하는 일일세. 필경사들은 누구나 자신이 베낀 것을 대조하게 되어 있네. 그렇지 않은가? 말을 하지 않을 텐가? 어디, 대답을 좀 해 보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바틀비는 피리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내가 그에게 연설하는 동안, 그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음미하고,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그 필연적인 결론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였으나, 동시에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그를 그와 같이 대답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고 같았다.
"그렇다면 자네는 나의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단 말이지 --- 일반적인 관습과 상식에 의거해서 이루어진 요구에도 말이지?"
그는 나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간단한 몸짓으로 이해시켰다. 그렇다. 그의 결정은 결코 번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전례가 전혀 없고, 또 전혀 말도 안 되는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요구를 거부당하게 되면, 그때까지 가장 명백하고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신념까지도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말하자면 정말로 이상한 일이지만, 모든 정의와 모든 타당성은 상대방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법이다. 따라서 그곳에 만일 공평한 제삼자가 있다면, 자기 자신의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응원을 청하게 되는 것이다.
"칠면조" 하고 나는 말했다. "이것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내가 잘못한 거요?"
"실례입니다만" 하고 칠면조는 더할 수 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펜치" 하고 나는 물었다. "자네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제 생각에는 사무실에서 쫓아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총명한 독자라면, 여기서 칠면조의 대답은 공손하고 점잖은 말투인 반면에 펜치의 대답은 신경질적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이것이 오전 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을 되풀이한다면, 펜치의 험악한 분위기는 당번이었고, 칠면조의 것은 비번이었던 것이다.)
"생강 비스킷" 하고 나는 가장 어린 한 표라도 나에게 끌어들여 보려고 말했다. '너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니?"
"제 생각에는 저 아저씨 머리가 돈 것 같습니다" 하고 생강 비스킷을 해죽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네도 직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겠지?" 하고 나는 칸막이 쪽으로 돌아서면서 말했다. "자아, 이리 나와서 일을 하게."
그러나 바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한 순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다급한 일이 나를 재촉했다. 또 다시 나는 이 딜레마에 대한 고찰을 뒷날의 한가한 시간까지 미루기로 결심했다. 약간 곤란하기는 했지만, 우리들은 바틀비를 빼놓고 서류들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칠면조는 한 페이지마다, 혹은 두 페이지마다 이런 일은 정말로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점잖게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았고, 한편에서 펜치는 소화불량에서 오는 짜증스러움으로 의자에서 몸을 비틀고, 이빨을 부드득 갈고, 이따금 칸막이 뒤의 고집 센 저능아에 대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펜치로서는 한푼의 보수도 받지 않고 남의 일을 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한편 바틀비는 자신의 은신처에 들어앉아서 자기 자신의 기묘한 일 외에는 모든 것을 다 잊고 있었다.
며칠인가가 지나갔고, 필경사들은 또 다른 긴 서류에 매달려 있었다. 전날의 놀라운 소행 때문에 나는 바틀비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나는 그가 점심 식사를 하러 전혀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전혀 아무데도 나가지를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오늘날까지 바틀비가 사무실 밖에 나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우리 사무실의 교대 없는 보초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매일 오전 11시경이 되면, 생강 비스킷이 바틀비의 칸막이 공간 쪽으로 다가가곤 하는 것을 나는 주의해서 보게 되었다. 아마 바틀비는 내가 앉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조용히 손짓으로 소년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은 이내 몇 페니인가를 짤랑거리면서 사무실을 나가, 얼마 뒤에 한 줌의 생강 비스킷을 들고 다시 나타나서 칸막이 뒤로 들어갔다가, 심부름값으로 두 개의 과자를 받아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생강 비스킷으로 연명해 가고 있는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점심 식사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채식주의자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그는 야채조차 먹지 않앗다, 바틀비는 생강 비스킷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는 전적으로 생강 비스킷만 먹고 살게 되면 인간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관한 공상을 하게 되었다. 생강 비스킷이란, 독특한 성분의 하나로 생강을 포함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그 향기를 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강이란 무엇인가? 얼얼하고 매운 식물이다. 바틀비가 얼얼하고 매운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생강은 바틀비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무저항의 저항만큼 성실한 인간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만일 저항당하는 인간이 비인간적인 기질이 아니고, 또 저항하는 인간이 그의 수동성에 전혀 악의가 없다면, 전자는 자신의 판단력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일지라도 기꺼이 상상력으로 짜맞추려고 노력할 것이 틀림없다. 대체로 그런 식으로 나는 바틀비와 그 행동을 주시해 보고 있었다. 불쌍한 친구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에게는 아무런 악의도 없는 것이다. 무례한 행동을 할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명백했다. 그의 태도로 보아 그의 기벽은 본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는 나에게는 크게 쓸모가 있다. 그와 얼마든지 함게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만일 그를 쫓아낸다면 아마 나보다 관대하지 못한 고용주를 만나서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쫓겨나서 결국에는 비참하게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자기 만족에 빠진 인간을 값싸게 사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바틀비와 친구가 되어 그의 기괴한 고집을 너그럽게 보아 넘긴다 해도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언젠가는 양심의 달콤한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을 내 영혼 속에 저축해 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무드가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바틀비의 수동적인 태도가 나를 짜증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의 새로운 반대에 부딪혀 보고 싶다 --- 나 자신의 분노에 걸맞는 노여움의 불꽃을 그에게서 이끌어내 보고 싶다는 기묘한 자극을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하얀 화장비누 조각에다 주먹을 비벼대서 불을 켜 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에 나는 악한 충동의 꾐에 빠져서 다음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다.
"바틀비" 하고 나는 말을 걸었다. "그 서류들을 모두 필경하고 나면 나하고 함께 대조를 좀 해 보세."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 설마 그 말도 안 되는 황소 고집을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 두짝문을 열어젖히고 칠면조 쪽으로 돌아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바틀비가 벌써 두 번씩이나 자신의 서류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칠면조 씨?"
이것이 오후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칠면조는 놋쇠 주전자처럼 달아올라서 앉아 있을 때였다. 그의 벗어진 머리에서는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양손은 얼룩진 서류 사이를 들락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구요?" 칠면조가 고함을 질렀다. "당장 칸막이 뒤로 달려가서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게 만들어 버리겠소!"
그렇게 말을 하면서 칠면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손을 들어 권투하는 자세를 취했다. 조금 전에 한 말을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기세라서, 나는 칠면조의 점심 식사 뒤의 호전성을 경솔하게 자극하게 된 결과에 경계심을 느끼고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
"자리에 앉으시오, 칠면조 씨"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펜치가 뭐라고 하는지 얘기를 좀 들어 봅시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펜치? 이 정도면 내가 즉각 바틀비를 해고시켜도 정당한 것 아니겠나?"
"죄송합니다만, 그것은 당신이 결정하실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원장님. 제 생각으로는 그의 행동은 전적으로 비정상적입니다. 사실 칠면조 씨나 저 자신과 비교해 보더라도 정당하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일시적인 변덕일지도 모릅니다."
"아, 그래?" 하고 이번에는 내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자네는 또 이상하게 마음을 바꾸었군그래 --- 전과는 달리 그에 대해서 아주 호의적으로 말하는데그래."
"모두 맥주 때문입니다" 하고 칠면조가 악을 썼다. "관대한 것은 맥주의 영향입니다. 펜치와 나는 오늘 함께 점심 식사를 했거든요. 내가 얼마나 관대한지 알 수 있겠지요, 법원장님. 내가 들어가서 눈두덩이를 한 대 갈겨 줄까요?"
"바틀비에 대해 말하는 모양인데, 안 됩니다. 오늘은 안 돼요, 칠면조 씨" 하고 나는 황급히 말했다. "제발 주먹을 좀 치워요."
나는 두짝문을 닫고 다시 바틀비 쪽으로 걸어갔다. 다시 한 번 자신의 운명에 도전해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나는 또 다시 반항을 당해 보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그때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한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랐다."
"바틀비" 하고 나는 말했다. "생강 비스킷이 외출을 해서 그러는데, 자네가 우체국에 잠시 갔다와 주지 않겠나? (우체국은 걸어서 겨우 3분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우편물이 와 있나 알아봐 주겠나?"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안 가겠다는 말인가?"
"하기 싫습니다."
나는 가까스로 내 책상으로 돌아와 그곳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나의 맹목적인 집념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이 말라빠진, 땡전 한푼 없는 인간에게 나 자산이 굴육적으로 거절을 당할 만한 일은 또 달리 없을까? --- 내가 고용한 필경사 녀석에게? 완전히 합리적인 일인데도 이 녀석이 거절할 것이 틀림없는 일은 또 추가로 없을까?
"바틀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바틀비!" 이번에는 좀더 큰 소리로 불렀다.
그래도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하고 나는 악을 썼다.
진짜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법의 초혼(招魂)의 주문에 답하듯이 세번째 부름에 그는 은신처 입구에 모습을 나타냈다.
"옆방으로 가서 펜치에게 나한테 오라고 전하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바틀비는 예의바르게 천천히 대답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래 좋아, 바틀비" 하고 나는 조용하고 담담하고 매우 침착한 어조로 말을 함으로써, 가까운 장래에 어떤 무시무시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단호한 결의를 넌지시 암시했다. 그 순간에는 절반쯤 그런 종류의 보복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저녁 식사시간이 다가와서 마음속으로는 당혹감과 우울함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일단 모자를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을 내가 시인해야만 할까? 이러한 모든 소동의 결과가 어떤 것이냐 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내 사무실 안에서는 곧 하나의 기정 사실이 되었다. 즉, 바틀비라는 이름을 가진 창백한 얼굴의 젊은 필경사는 사무실 안에 한 개의 책상을 갖고 있고 1폴리오(1백 단어)당 보통 4센트라는 돈을 받고 나를 위해 필경을 하지만, 그는 영구히 그 자신이 베껴 쓴 문서를 검토하는 일에서는 제외되고 그 의무는 칠면조와 펜치에게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두 사람의 빼어난 정확성에 경의를 표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바틀비는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어떤 종류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절대로 심부름을 보내지 않았고, 설사 그에게 그러한 일을 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하더라도 그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 즉, 바꿔 말해서 정면으로 맞대 놓고 거절할 것이라는 것을 일반적으로 모두 양해하고 있었다.
날이 흘러갈수록 나는 바틀비에게 꽤나 우호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의 착실성, 낭비라는 것은 찾아볼 수도 없는 검소함, 쉬지 않는 근면성(단, 칸막이 뒤에서 끝없는 공상에 잠겨 있을 때만을 제외하고), 그의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조용함, 어떤 상황하에서도 변함이 없는 행동거지 등, 모든 것이 그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일꾼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특히 강조할 만한 것은 그는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이었다 --- 아침에는 제일 먼저 출근을 하고, 하루종일 자리를 비우지 않으며, 저녁에는 제일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정직성에 이상하리만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서류를 그에게 맡겨도 절대로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갑자기 그에게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왜냐하면 바틀비가 우리 사무실에서 누리고 있는 암묵적인 조건, 즉 온갖 기묘한 특례, 특권,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예외 조항들을 항상 마음 속에 담아 두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화급한 용건을 처리하기 위해 다급한 나머지 나는 빠른 말투로 바틀비를 불러, 묶으려고 하는 서류끈의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 달라고 한다. 물론 칸막이 뒤에서는 언제나처럼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되올아올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 인간인 이상 ---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약점이지만 --- 이처럼 외고집에다 몰지각한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받은 이런 종류의 거절이 거듭될 때마다 내쪽에서도 그를 찾는 경우가 차츰 적어져 갔다.
여기서 미리 말해 두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많은 변호사들의 사무실이 있는 법률 사무실 빌딩에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기 때문에, 다른 곳처럼 우리 사무실에도 여러 개의 열쇠로 열고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이었다. 하나는 매주 한 번씩 사무실을 물로 닦고 매일 청소를 하는 지붕 밑 방에 사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었고, 또 하나는 편의상 칠면조가 보관하고 있었다. 세번째 열쇠는 내가 이따금 주머니에 집어넣고 가지고 다녔으며, 네버내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는지 나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려고 우연히 트리니티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독착해 보니까 시간이 너무 일러서 잠시 사무실까지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 열쇠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자물쇠에 열쇠를 꽂으려고 하는데 무엇인가가 안쪽에서 꽂혀 있어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몹시 놀라서 큰 소리로 안에 누가 있느냐고 불러 보았다. 게다가 더욱 놀랍게도 안에서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깡마른 얼굴이 문 사이로 조금 보이고, 그대로 문을 꽉 고정시킨 채 바틀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외출복도 아니도 셔츠 바람에 남루한 파자마를 걸치고 있잇었다. 바틀비는 조용한 목소리로, 미안하지만 지금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 지금은 들어오게 할 수가 없으며, 그리고 간략하게, 이 블록을 두세 바퀴 가량 돌고 오면 그때까지는 아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는 것이었다.
이 전혀 뜻하지 않은 바틀비의 출현과 일요일 아침의 내 법률 사무실을 셋방 삼고 있는, 시체와 같이 창백하면서도 신사처럼 태연자약하고, 게다가 확신과 침착성까지 갖춘 모습을 보고는 나는 이상한 감동을 느끼고 나답지 않게 내 사무실 문을 떠나서 그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이 불가사의한 필경사의 점잖으면서도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무력한 반항심이 온갖 형태로 가슴을 쿡쿡 쑤셔댔다. 사실 그의 놀라울 정도로 점잖은 태도가 주로 나를 무장해제시켰지만, 그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의 사내다움까지 빼앗아 갔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용한 서기가 주인에게 명령을 내리고 자기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지시를 할 경우, 그 사람은 그때 이미 사내다움을 잃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바틀비가 셔츠와 꾀죄죄한 파자마 차림으로 나의 사무실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을지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슨 범죄가 꾸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된다. 바틀비가 부도덕한 인간이라는 것은 잠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 필경을 하고 있었을까? 아니, 그것도 아니다. 그 아무리 꾀자하고 해도 바틀비는 품행이 빼어나게 단정한 인물이다. 벌거숭이에 가까운 꼴로 자기 책상 앞에 앉다니, 그것은 말도 안 된다.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 아닌가! 더구나 바틀비에게는 신성한 일요일을 어떤 세속적인 직업으로 더럽힐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계속)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안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마침내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나는 열쇠를 꽂고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틀비의 모습은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불안스럽게 방안을 둘러보고 칸막이 뒤까지도 들여다보았으나 그가 사무실을 나간 것은 명백했다. 사무실 안을 좀더 세밀하게 살펴본 결과, 나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바틀비가 내 법률 사무실에서 먹고 옷을 갈아입고 잠까지 잤다는 것, 그것도 접시도 거울도 침대도 없이 그렇게 지냈으리라고 추측했다. 사무실 구석에 있는 부서져 가는 낡은 소파의 쿠션 위에 여읜 몸을 뉘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의 책상 밑에서 똘똘 말아놓은 담요를 한 장 발견했다. 벽난로 받침대 밑에는 검정 구두약과 구둣솔이, 의자 위에는 비누와 누더기 타월이 담긴 양철 세숫대야가, 그리고 신문지 사이에는 생강 비스킷 부스러기와 치즈 조각이 있었다. 그렇다. 바틀비가 이곳을 집으로 삼고 독신생활을 영위해 온 곳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 생각은, 이 얼마나 비참한 혈혈단신의 고독을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나 가난했다. 그의 고독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끔찍한 일인가! 한번 생각해 보라. 일요일이면 월스트리트는 페트라처럼 폐허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매일 밤이면 온 거리가 텅 비어 버린다. 이 빌딩 역시 평일의 낮 동안에는 부지런함과 활기로 시끌시끌하지만, 밤이 찾아오면 철저한 공동이 메아리칠 뿐이고, 일요일은 온종일 버림받은 땅이다. 그런데 바틀비는 이곳을 집으로 삼았다. 붐비는 한낮을 보아 온 그가 처절한 고독의 외로운 목격자가 된다 --- 카르타코의 폐허에서 명상하는 무고한 마리우스의 전락한 모습 같다고나 할까!
난생 처음으로 가슴을 쿡쿡 찌르듯이 압도해 오는 우울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나는 달콤한 슬픔 같은 것밖에는 경험한 적이 없었다. 다 같은 인간이라는 유대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암울함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형제 같은 우애의 우울감! 왜냐하면 나와 바틀비는 모두 아담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보고 온, 브로드웨이의 미시시피 강을 헤엄쳐 가는 백조처럼 축제의상으로 장식한 군종의 찬란한 비단 옷과 반짝이는 얼굴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그들과 시체처럼 창백한 필경사를 비교해 보고 혼자 생각했다. 아아, 행복은 빛을 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즐거운 것으로 보지만, 비참함은 초연히 숨기 때문에 이 세상에 비참함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글픈 생각들 ---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병들고 어리석은 머리에서 나오는 망상이겠지만 --- 은 바틀비의 기행에 관한 또 다른, 좀더 특별한 생각으로 이어져 갔다. 기괴한 발견들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필경사의 창백한 몸이 무관심한 이방인들 속에서 수의에 감싸여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나는 바틀비의 닫혀진 책상에 주의가 끌렸다. 자물쇠 구멍에 열쇠가 꽂힌 채로 있지 않은가!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비정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했다. 게다가 책상은 내 것이고 내용물 또한 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담하게 책상 서랍 속을 들여다보았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고 필경 용지도 단정하게 쌓여 있었다. 작은 서랍들이 좀 깊어서, 서류철을 옆으로 치우고 후미진 곳을 손으로 더듬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낡은 대형 손수건이었는데, 묵직한 무엇인가가 싸 매어져 있었다. 그것을 풀어 보니까 저금통이었다.
이제 나는 바틀비에 대해서 품고 있었던 모든 조용한 수수께끼들을 기억해 냈다. 즉, 그는 대답을 하는 것 외에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이따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상당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 하여간 신문조차도 읽지 않았다. 그는 칸막이 뒤의 어두침침한 창가에 서서 꽤 오랫동안 죽음과 같은 벽돌벽을 응시하고 있곤 했다. 단 한 번도 큰 식당이나 레스토랑 같은 곳에 간 적이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또한 창백한 얼굴이 명백히 말해 주듯이, 그는 칠면조처럼 맥주를 마시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홍차나 커피조차도 마시지 않았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가는 일도 없었다. 산책을 하러 나가는 일도 없었다(지금 산책을 나갔다면 그것은 예외지만). 그리고 바틀비는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이 세상에 친척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어떤지에 대하여 말하기를 거부해 왔다. 그처럼 야위고 안색이 창백했지만, 건강이 나쁘다고 불평을 늘어놓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것은 창백한 죽음의 ---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 창백한 죽음의 오만함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그가 지닌 준엄한 자제력이라고 할까, 그런 어떤 무의식적인 태도가 나를 두렵게 만들고 그의 기행에 순순히 영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사 그가 오래 전부터 꼼짝도 하지 않고 칸막이 뒤에서 벽을 들여다보며 공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지라도, 나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에게 시키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일들을 생각하고 또 그가 내 사무소를 영속적인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었다는 방금 발견한 그 사실을 그것에 결부시키고, 특히 그의 병적인 우울한 태도를 잊지 않는다면 --- 즉, 이와 같은 모든 사실들을 숙고할 때 조심스러운 어떤 감정이 나를 살포시 감싸는 것이었다. 나의 첫번째 감정은 순수한 우울과 충심에서 우러난 연민의 감정이었으나, 바틀비의 절망적인 고독이 점점 더 커지면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어서 그와 비례하여 우울이 공포로 변하고 연민이 혐오로 변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진실하고 또한 끔찍한 일이어서, 어떤 점까지는 비참함을 인식하거나 목격하거나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두터운 친밀의 정을 불러일으켜 주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그 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그렇지 않게 된다. 이것을 예외 없이 인간의 마음속에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이기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차라리 그것은 과도하고 근본적인 병을 치유하는 데 대한 어떤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감수성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연민은 종종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민이 효과적인 구원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상식은 영혼에게 그것을 버리라고 명하는 것이다. 그날 아침에 본 것은 나에게 바틀비가 선천적인 불치의 정신이상의 피해자라는 것을 납득시켜 주었다. 나는 그의 육체에 은혜를 베풀 수는 있겠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며, 그의 영혼에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것이다.
그날 아침, 나는 트리니티 교회에 간다는 목적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어쨌든 그날 본 일들이 그때 교회에 갈 기분을 잡쳐 버렸던 것이다. 바틀비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걸어서 집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나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 내일 아침 그의 과거와 기타 사항에 대해서 조용히 몇 가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만약 그가 까놓고 서슴없이 그 질문에 대답할 것을 거절한다면(아마 그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에게 줄 급료에다 20달러를 더 얹어 주고 더 이상 우리 사무소에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만약 다른 방법으로 그를 도와줄 수가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특히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간에 고향으로 가는 경비를 모두 부담해 주겠다. 그리고 또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라도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길 경우, 편지만 써 보내면 언제든 즉각 답장을 해 주겠다고 말할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찾아왔다.
"바틀비" 하고 나는 상냥하게 칸막이 뒤의 그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업었었다.
"바틀비" 하고 나는 계속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리 와 보게. 그러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로 물어 보지 않을 생각이니까 --- 다만 자네에게 몇 가지 얘기할 것이 있어서 그러네."
이 말을 듣고서야 바틀비는 소리 없이 내 시야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자네는 어디 태생인가, 바틀비? 나에게 말해 줄 수 없겠나?"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자네 자신에 관해서 무슨 일이든 나에게 말해 줄 수 없겠나?"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네, 나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거절할 만한 어떤 합리적인 이유라도 있나? 나는 자네에 대해서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데 말일세."
내가 말하고 있는 동안, 바틀비는 나를 보지 않고 계속 시선을 키케로의 흉상에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 흉상은 내가 앉아 있는 바로 뒤쪽에, 정확히 말해서 내 머리 위 6인치쯤 되는 곳에 놓여 있었다.
"뭐라고 대답을 좀 해주지 않겠나, 바틀비?"
나는 한참 동안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 동안 그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나, 다만 핏기 없는 얇은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대답을 드리고 싶지가 않습니다." 바틀비는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은신처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마음이 약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태도에 대해서 화가 났다. 거기에는 일종의 조용한 경멸이 잠재해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비뚤어진 외고집은 나에게서 받은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호의에 넘친 관대함이었음을 감안할 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했다. 그의 태도에 화가 나서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그를 해고시켜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스럽게도 무엇인가 미신적인 가슴 설렘이 목적의 실행을 저지하고, 만약 모든 인간들 가운데서 가장 고독한 이 사람에게 감히 한 마디라도 무정한 말을 내뱉는다면 나야말로 악당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하는 수 없이 칸막이 뒤로 내 의자를 끌고 들어가 앉아서 다정하게 다시 말을 했다.
"바틀비, 그렇다면 자네의 신상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네. 그러나 친구로서 부탁하겠는데, 최소한 이 사무실의 관례만은 따라 주지 않겠나? 그러니까 내일이나 모레부터 자네도 서류를 검토하는 일을 도와주기 바라네. 간단히 말하면 글쎄, 내일이나 모레부터 자네도 약간 융통성이 있는 인간이 되어 달라는 것일세 ---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 주게, 바틀비."
"현재로는 약간의 융통성을 갖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그의 조용한 시체와 같은 대답이었다.
바로 그때 두 짝문이 열리고 펜치가 다가왔다. 그는 평소보다 심한 소화불량으로 지난 밤에는 잠도 못 자고 고생을 한 것 같았다. 그는 바틀비의 마지막 말을 엿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펜치는 이를 갈았다. "내가 당신이라면 법원장님, 이 녀석이 그러고 싶도록 만들겠습니다" 하고 펜치는 나를 보고 말했다 --- "그러고 싶게 만들고말고요! 이런 고집 센 노새 같으니라고! 그러고 싶도록 만들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법원장님, 그 녀석이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이?"
바틀비는 끄떡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펜치 군" 하고 나는 말했다. "나는 지금 당장 자네가 여기를 나가 주었으면 싶네."
어찐 된 일인지, 최근에 나는 이 '싶네'라는 말을 적절한 곳이 아닌데도 무의식적으로 써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바틀비와 접촉한 영향이 이렇게 심각하게 나의 정신기능에까지 미쳤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섬뜩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괴이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내가 과감한 조치를 취하려고 결심한 것도 이런 걱정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펜치가 기분이 몹시 상한 얼굴로 거칠게 방을 나가자, 이번에는 칠면조가 점잖게 다가왔다.
"미안합니다만, 법원장님" 하고 칠면조가 말했다. "어제 나도 여기 있는 바틀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요. 내 생각에는 만약 그가 매일 한 쿼트의 맥주를 들이켜고 싶어 하기만 한다면, 결점을 고치게 하고 서류 대조에도 자발적으로 참가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흠, 당신도 그 말에 전염이 되었군요" 하고 나는 약간 흥분해서 말했다.
"미안합니다만, 법원장님. 무슨 말입니까?" 칠면조가 물으면서 비좁은 칸막이 뒤의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바틀비를 떠미는 모습이 되었다. "무슨 말인데요, 법원장님?"
"저는 이곳에 혼자 있고 '싶습'니다" 하고 바틀비는 마치 자기 방에 사람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이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바로 저 말일세, 칠면조씨" 하고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 바로 그 말이라니까."
"아아, 그러고 싶다는 말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 묘한 말입니다. 나는 그 말을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한 적은요, 만약 그가 마시고 '싶다'고......."
"칠면조씨" 하고 나는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도 이 방에서 나가 주었으면 좋겠소."
"아아 물론이지요, 법원장님. 내가 나가는 것이 좋다 싶으시면......."
그가 자기 방으로 가기 위해 두 짝문을 열자, 자기 책상에 앉아 있던 펜치가 나를 보고는 서류를 흰 종이와 푸른색 종이 중 어느 쪽에 베끼고 싶은가를 물어 왔다. 그는 '싶다'는 말을 전혀 장난기가 섞이지 않은 악센트로 발음했다. 그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이 명백했다. 나는 저 머리가 좀 이상한 녀석을 무슨 일이 있어도 제거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나 자신과 서기들의 머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혓바닥을 어느 정도 이상하게 돌아가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 당장 해고를 선언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나는 바틀비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언제나처험 창가에 서서 죽음의 벽을 응시하며 공상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왜 필경을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바틀비는 더 이상 필경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어떻게 할 생각인가?" 하고 나는 외쳤다. "더 이상 필경은 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은요."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까?" 바틀비는 냉담하게 말했다.
나는 똑바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이 둔탁하게 흐려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그가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서부터 몇 주일 동안 침침한 창가에서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필경을 해왔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시력이 나빠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동정하는 말을 몇 마디 하고는, 물론 얼마 동안 필경을 중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하고 이 기회에 야외에 나가서 운동을 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했다. 그러나 바틀비는 이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다른 서기들은 모두 외출해서 없고아주 급히 몇 통의 편지를 부칠 일이 생겨서 나는 천상천하에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바틀비가 다른 때보다는 고분고분해져서 그 편지를 가지고 우체국으로 가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는 매정하게 거절을 했다. 그래서 무척 힘이 들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다시 며칠이 지나갔다. 바틀비의 시력이 좋아졌는지 더 나빠졌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는 한 좋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이 좀 좋아졌느냐고 내가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바틀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죽어도 필경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나의 끈질긴 질문에 대답을 한다는 것이 그는 앞으로는 영원히 필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하고 나는 고함을 질렀다. "자네의 눈이 완전히 좋아져도 --- 아니, 이전보다 더 좋아져도 --- 자네는 필경은 하지 않겠단 말인가?"
이전처럼 바틀비는 거기에 있었다. 마치 내 사무실의 비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 그는 이전보다 한층 더 비품답게 되어 버렸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단 말인가? 그는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거기에 머물러 있단 말인가? 명백한 사실은 그는 이제 나에게 연자맷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목에 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짊어질 수도 없었다[성경에 나오는 비유]. 그런데도 나는 그가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이따금 불안해진다고 말하는 정도로는 진실을 다 말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바틀비가 한 사람의 친척이나 친구의 이름이라도 말해 준다면, 나는 당장 편지를 써서 어디든 좋으니까 이 불쌍한 친구를 데려가라고 신신당부를 할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는 이 우주에 집도 절도 없이 단 혼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서양 한가운데에 떠 있는 난파선의 한 조각이다. 그러나 결국은 나의 일과 관련된 필요성이 다른 모든 동정심을 짓밟고 맹위를 발휘하게 되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점잖은 말투로 나는 바틀비에게, 지금부터 6일 이내에 무조건 이 사무실을 떠나 달라고 고했던 것이다. 그 동안에 다른 잠자리를 찾아볼 궁리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다. 그가 이사를 가기 위한 첫번째 조치만 취해 주어도 그 노력에 대해서 응분의 도움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리고 자네가 정말로 여기를 그만둘 때에는" 하고 나는 덧붙였다. "빈손으로 떠나 보내지는 않을 것일세. 정확히 6일 후의 바로 이 시간까지일세. 잘 기억해 두게."
그 기한이 완료되었을 때 나는 칸막이 뒤를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보라! 바틀비는 그냥 거기에 있었다.
나는 코트 단추를 모두 채우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천천히 바틀비 쪽으로 걸어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기한이 다 되었네. 이제는 이 사무실을 나가 주게. 자네에게는 안됐지만, 여기를 나가주게. 자아, 그 동안의 급료를 받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바틀비는 아직도 나에게 등을 돌린 채 대답을 했다.
"나가 달라니까!"
그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이 사람의 평소의 정직성에 대해서 거의 무한대의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잔돈 같은 것에 대해서 굉장히 무관심했기 때문에 흔히 6펜스나 1실링짜리 동전을 마룻바닥에 흘리고 다녔는데,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주워서 나에게 되돌려주곤 했었다. 따라서 그 다음에 내가 취한 조치는 그다지 상식에 벗어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틀비" 하고 나는 말했다. "자네에게 지불할 급료가 12달러인데, 여기에 32달러가 있네. 급료를 제외한 20달러는 그냥 받아 두게 --- 받아 주겠지?" 하고 나는 지폐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바틀비는 몸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럼, 돈을 여기에 놓아 두고 나가겠네."
그리고는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들고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덧붙여 말했다.
"사무실에서 자네 물건을 모두 들고 나간 다음에 물론 문을 잠그는 것을 잊지 않겠지, 바틀비? --- 자네를 빼고 모두들 오늘은 퇴근을 했으니까 말일세 --- 그리고 그 열쇠는 매트 밑에 밀어넣어 주게. 그래야만 내일 아침에 내가 챙길 수 있으니까 --- 이제 다시는 자네를 만날 수 없겠지. 그러니 잘 가게. 만일 앞으로 새 일자리가 정해져서 도움이 필요하면 나에게 편지를 하게. 잘 가게, 바틀비. 앞날의 행운을 빌겠네."
그러나 바틀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폐허가 된 성당의 마지막 남은 돌기둥처럼, 그는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는 방 한가운데 말없이 외롭게 계속 서 있었다.
씁쓸한 기분으로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의 허영심은 연민의 정을 몰아냈다. 나는 바틀비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내가 발휘한 교묘한 솜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묘하다고 나는 말했는데, 감정에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인정해 줄 것이다. 내가 취한 조치의 좋은 점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조용히 해결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천박한 욕지거리를 퍼붓거나 어떤 종류의 허세를 부리거나 고래고래 고함을 치거나,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하면서 바틀비에게 그 지저분한 보따리를 싸서 가지고 당장 나가라고 악의에 찬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런 종류의 일은 일체 하지 않았다. 바틀비에게 나가라고 큰 소리로 명하지 않고 --- 아마 덜 현명한 사람들은 그렇게 했을 것이다 --- 나는 그가 자기 발로 걸어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그런 전제하에서 내가 할 말들을 생각해 냈다. 나 자신이 취한 방법을 생각하면 할수록 자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의심스러운 생각들이 떠올랐다 --- 잠자는 사이에 나의 허영심의 독기가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이 가장 냉정해지고 현명해지는 시간대 중 하나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직후일 것이다. 내가 취한 조치는 여전히 현명한 것처럼 보였지만 --- 그것은 다만 이론일 뿐이지 않은가? 실제로는 어떻게 실천이 될까? 그것이 문제다. 바틀비가 떠나지 않을 수 없게 설정한 것은 정말로 멋진 아이디어였지만, 그러나 결국은 그런 설정은 단순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 바틀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중요한 포인트는 그가 그만두도록 내가 꾸몄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가 그러고 싶으냐 그러고 싶지 않으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즉, 바틀비는 나의 설정에 의해서 움직이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행동하는 인간인 것이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어떤 순간에는 나의 계획이 비참한 실패로 끝나서 바틀비는 언제나처럼 사무실에 버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 다음 순간에는 그의 자리가 틀림없이 비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계속 갈팡질팡했다. 브로드웨이와 커낼스트리트가 교차하는 모퉁이에서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서 흥분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가 안 나온다는 쪽에 돈을 걸겠네" 하고 그 옆을 지나갈 때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뭐, 안 나온다고? --- 아냐, 나오고말고!" 하고 나는 반박했다. "그럼, 돈을 걸게나."
본능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는 순간, 나는 그날이 선거일이라는 것을 기억해 냈다. 내가 엿들은 것은 바틀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어떤 시장 후보자가 출마하느냐 출마하지 않느냐 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때의 나의 심리상태는 브로드웨이 전체가 나와 함께 흥분하고 있었고, 나와 같은 문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고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길거리의 소동이 나 자신을 순간적인 방심상태로부터 구해 준 것을 감사하면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의도했던 대로 나는 여느 때보다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잠시 동안 그곳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방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바틀비는 틀림없이 사무실에서 나갔을 것이다.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래, 내 조치가 멋지게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바틀비는 제 손으로 보따리를 싸서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찜찜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의 혁혁한 전과가 오히려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바틀비가 나를 ㅜ이해 남겨놓고 갔을 사무실 열쇠를 찾으려고 매트 밑을 손으로 더듬었다. 그때 우연히 내 무릎이 문에 부딪히면서 노크를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러자 그것에 대답헤서 방안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 왔다 --- "아직 안 됩니다. 지금 바쁘니까요."
그것은 바틀비의 목소리였다.
나는 벼락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순간 나는, 오래 전에 버지니아에서 어느 맑게 갠 날 오후에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여름날의 벼락에 맞아 죽은 사람처럼 거기에 넋을 잃고 서 있었다. 그 사람은 활짝 열어젖힌 창가에서 죽어 있었는데, 누군가가 손을 대서 폭삭 사그라질 때까지 꿈 같은 오후의 풍경을 감상하느라고 그곳에서 몸을 내밀고 서 있었다고 한다.
"떠나지 않았군!" 한참 만에야 나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또 다시 그 불가해한 필경사가 나에게 갖고 있는 놀라운 마력이 시키는 대로 --- 아무리 안달을 해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그의 마력이 시키는 대로 ---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길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나는 이 전대미문의 난처한 입장에 놓인 나 자신이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완력으로 그를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험한 욕지거리를 해서 그를 쫓아내는 것도 전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경찰을 부르는 것도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나에 대해서 죽음과 같은 섬뜩한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한다는 것 역시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단 말인가? 만일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손을 쓸 수가 없단 말인가? 그렇다. 이젠에 나는 바틀비가 그만둘 것이라는 가정을 예상해서 했지만, 이번에는 이미 그가 그만두었다고 하는 가정을 회고적으로 하면 된다. 이런 가정을 올바로 실행에 옮기려면,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서 바틀비를 전혀 보지 못한 것처럼 가장하고 마치 그가 공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행햐서 걸어가면 된다. 이런 방법이 문제의 급소를 찔러서 그 기괴한 면을 여실히 드러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틀비도 이처럼 가정의 이론을 적용당하게 되면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이 계획의 성공도 역시 의심스러워 보였다. 나는 다시 한번 이 문제를 그와 의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바틀비" 하고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조용하면서도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굉장히 불쾌하네. 그리고 화가 치미네, 바틀비. 나는 자네가 좀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네. 자네를 신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미묘한 딜레마에 빠져 있어도, 아주 조그만 암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상상했었네 --- 하지마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네. 아니, 이럴 수가!" 하고 나는 정말로 깜짝 놀라면서 덧붙였다. "자네는 그 돈에 아직 손도 대지 않았군그래."
돈은 어제 저녁에 내가 놓아둔 곳에 그대로 있었다.
바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만둘 텐가? 아니면, 그만두지 않을 텐가?" 나는 분노에 사로잡혀서 그에게 다가가면서 따지고 들었다.
"저는 이곳을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싶지 않다'는 말을 강조하면서 조용히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권리로 자네는 여기에 남아 있겠다는 것인가? 자네가 집세라도 낸다는 것인가? 내 세금을 내주겠단 말인가? 아니면, 이 사무실이 자네 것이라도 된단 말인가?"
바틀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 앞으로는 필경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단 말인가? 자네의 시력은 완전히 회복이 되었나? 오늘 아침에 나를 위해 간단한 서류를 복사해 줄 수 있겠나? 아니면 몇 줄 대조하는 것을 도와주겠나? 아니면 우체국까지 심부름을 가 주겠나? 요컨대 이 사무실을 나가는 것을 거절할 생각이면 표면적으로라도 무슨 일이든 해 줄 생각이 있느냔 말일세?"
바틀비는 말없이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너무나 신경질적인 노여움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더 이상 공격을 가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짓이라고 애써 내 자신을 타일렀다. 바틀비와 나밖에는 아직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나는 불행한 애덤스와 그보다 더욱 붙행한 콜트가 후자의 사무실에 두 사람만 있었을 때 일어난 비극을 생각해 냈다. 애덤스의 짓궂은 도발을 받고 경솔하게도,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무의식 중에 치명적인 잘못 --- 물론 그 누구보다도 그 배우 자신의 천추의 한이 될 수 있는 잘못 --- 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 비극을 되돌이켜볼 때마다 나는 종종 그 언쟁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나 누군가의 집에서 일어났다면, 그런 식으로 사건이 결말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미 넘치는 가정적 분위기를 연상시킬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빌딩 2층의 외따로 떨어진 사무실 안에 단 둘이 있었다는 상황 --- 의심할 바 없이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먼지투성이의 살풍경한 외양을 지닌 사무실이었다는 상황 --- 이런 상황이야말로 불운한 콜트로 하여금 절망적인 범행을 저지르게 만든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한이라는 인성의 악이 내 마음에 고개를 쳐들고 바틀비에 대해서 유혹했을 때, 나는 그놈의 목을 붙잡고 내동댕이쳐 버렸다. 어째서? 그것은 간단하다. 다음과 같은 신성한 충고를 머리에 떠올렸기 때문이다. "새 생명을 너희에게 주나니, 서로 사랑하라." 그렇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이 성경 말씀이었다. 골치 아프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박애는 광대한 지혜와 분별의 원리로서 작용하고, 그 소유자에게는 커다란 보호자로서 작용하는 법이다. 인간은 질투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이기심 때문에, 그리고 영적인 교만 때문에도 사람을 죽이지만, 내가 들은 바로는 어떤 인간도 달콤한 박애 때문에 잔인한 살인을 범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고상한 동기를 내세울 것까지도 없이 단순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든 사람들은 특히 성을 잘 내는 사람들에게 박애와 자선의 덕을 일깨워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쨌든 이 경우의 문제에 대하여 나는 그의 행동을 선의로 해석함으로써 필경사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햤다. 불쌍한 녀석, 불쌍한 녀석!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지 않았는가!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도록 하자.
또한 나는 즉각 나 자신을 일에 몰두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동시에 바틀비에게서 당한 굴욕을 달래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잘하면 혹시 오전 중에 바틀비가 자진해서 은신처에서 나타나 문쪽으로 걸어 나가 줄지도 모른다 --- 고 하는 어리석은 공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2시 반이 되자 칠면조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얼마 뒤에 잉크스탠드를 뒤집어엎더니, 늘 그렇듯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펜치는 마음이 약해져서 조용해지고 예의바르게 되었다. 생강 비스킷은 점심 대신에 사과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바틀비는 언제나처럼 창가에 서서 죽음의 벽을 응시하며 공상에 잠겨 있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이 믿어 줄까? 과연 이런 일을 인정해야만 할까? 그날 오후 나는 그에게 더 이상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렇게 해서 또 며칠이 지나갔다. 그 동안 여가가 있을 때면 나도, 에드워즈의 <의지론>과 프리스틀리의 <숙명론>을 읽어 보았다. 그런 상황 아래에서는 이 두 권의 책이 건전한 정서를 가져다 주었다. 차츰 그 필경사로 인해서 생기는 나의 갖가지 트러블은 태초부터 미리 정해진 운명이고, 만사에 현명한 하느님의 신비로운 목적을 위해 나에게 보내진 인간이니까, 나와 같은 평범한 피조물은 헤아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굳어져 갔다. 그래, 좋다. 바틀비, 그 칸막이 뒤에 죽치고 앉아 있어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나는 너를 비난하지 않겠다. 너는 저기 놓인 낡은 의자처럼 누구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시끄럽게 굴지도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나는 혼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제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인생의 전생부터 정해져 있는 목적을 이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만족스럽다. 다른 인간들은 좀더 고상한 역할을 하도록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내 사명은 바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그를 이 사무실에 머물게 하는 일이다.
나는 이런 현명하고도 축복받은 마음의 상태가 우리 사무실에 찾아오는 동업자인 변호사 친구들의 주제넘고 비정한 참견이 아니었더라면 영원히 계속되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도량이 좁은 사람들과 계속 마찰을 빚다 보면 훨씬 관대한 인간의 가장 선한 결심까지도 마침내는 흔들리게 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볼 때, 우리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바틀비의 기괴한 행동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연히 그에 관해서 좋지 않은 말을 털어놓게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따금 나와 업무상으로 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우리 사무실을 찾아와 그 필경사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직원에게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고 여러 가지를 묻곤 한다. 그러나 그 변호사의 질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바틀비는 꼼짝 않고 사무실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곤 한다. 그러면 얼마 동안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바틀비를 이리저리 살펴본 다음에, 그 변호사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방을 나가 버린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조정협의가 열리고 있었을 때, 사무실 안은 변호사와 증인들로 붐비고 일은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창 일에 쫓기고 있던 한 변호사가 빈둥거리고 있는 바틀비를 발견하고, 그에게 자기 사무실로 달려가서(그 사람의 법률 사무실은 같은 건물에 있었다) 자신을 위해 어떤 서류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바틀비는 점잖게 거절하고, 계속 이전처럼 그곳에서 빈둥대고 있었다. 그러자 그 변호사는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내 쪽으로 돌아섰다. 그렇지만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나는 나의 모든 직업적인 동료들 사이에서 내가 사무실에 두고 있는 그 기괴한 사나이의 정체에 관해서 의아스러워하는 수군거림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나를 무척이나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무 무지무지하게 오래 살 인간일지도 모른다. 내 사무실을 차지하고 나의 권위를 부인한다면 어떻게 할까? 방문객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나의 직업적인 명성을 위협하고, 사무실 주위를 온통 음침하게 만들고, 저금통을 모두 써 버릴 때까지 정신과 신체를 함께 유지하고(의심할 바 없이 그는 하루에 5센트밖에 쓰지 않을 테니까), 끝에 가서는 나보다 오래 살아서 여태까지 그곳에서 살왔다는 이유로 사무실의 소유권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런 온갖 불길한 예상들이 나를 더욱 더 심하게 괴롭히고, 친구들은 계속 우리 사무실에 있는 유령에 대해서 가차없는 질책을 퍼붓고 있었다. 나에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나를 몹시도 괴롭히는 악몽 같은 존재를 영원히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 목적에 걸맞는 복잡한 계획을 세우기 앞서, 우선 먼저 바틀비에게 사무실에서 깨끗이 나가 달라고 단순하게 제의해 보았다. 분별 있는 어른답게 그것을 숙고해 보라고 냉정하고 진지한 말투로 권했다. 그러나 3일 동안을 심사숙고하고 난 뒤, 바틀비는 종전의 결심 --- 요컨대 사무실에 남아 있고 싶다는 결심 --- 을 바꿀 수는 없다고 통고해 왔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나는 코트의 단추를 남김 없이 잠그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이 인간, 아니 이 유령에게 양심은 어떻게 해결하라고 명할까? 그를 제거해야 한다. 그는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불쌍하고 창백하고 무저항인 인간을 내쫓을 수는 없지 않은가? --- 이와 같이 집도 절도 없는 인간을 사무실 밖으로 쫓아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안 된다.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할 능력도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를 여기서 살고 여기서 죽도록 내버려두겠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그의 시체를 벽 속에 집어넣고 벽돌로 발라 버려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무리 달래고 타일러도 그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 돈으로 매수하려고 해도 그는 내 책상의 문진 밑에 그 돈을 끼워 놓았다. 요컨대 그가 이 사무실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중대한, 색다른 수단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수단을? 분명히 경찰관을 시켜서 그의 멱살을 끌로 나가게 할 수는 없다. 그 죄없는 창백한 몸을 파렴치범들이 있는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어떤 근거로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 그가 부랑자라도 된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그가 부랑자라고? 여기를 나가려고 하지 않는 인간이 떠돌이 부랑자라고? 그는 부랑자가 되기 싫어하는 놈이니까 아예 부랑자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것도 또한 말이 안 된다. 명확한 생활 수단을 갖지 못한 인간 --- 이 정도면 되겠지. 또 틀렸다. 왜냐하면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으며, 그것은 생계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반박할 수 없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가 나를 떠나지 않겠다면 내가 그를 떠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무실을 옮기면 되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만약 새로 이사를 간 곳까지 그가 따라온다면 가택 침입죄로 고발을 하겠다고 정정당당하게 통고를 하자.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다음날, 나는 그에게 통고했다.
"이 사무실은 시청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공기도 좋지 않네. 그래서 나는 다음 주에 이사를 할 생각일세. 그리고 자네는 더 이상 이곳에서 일을 할 필요가 없네. 이것은 자네가 다른 데서 일자리를 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미리 말해 두는 것일세."
바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예정된 날짜에 나는 짐수레와 인부를 고용하여 사무실로 갔다. 가구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이사는 불과 몇 시간만에 끝났다. 그동안 내내 바틀비는 칸막이 뒤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칸막이를 마지막에 옮기기로 했다. 드디어 거대한 서류처럼 접혀진 칸막이가 치워졌다. 그리고 그 뒤의 텅 빈 방에 그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잠시 문턱에 서서 그를 지켜보고 서 있는 동안 나의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나를 신랄하게 꾸짖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잘 있게, 바틀비. 나는 가네 --- 잘 있게.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이것을 받아 두게."
얼마간의 돈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룻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 좀 이상한 말이지만 --- 나는 그토록 제거하기를 열망하던 인간으로부터 억지로 내 몸을 떼어냈다.
새 사무실로 옮기고 나서 하루이틀 동안, 나는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복도에서 발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잠시 외출했다가 사무실에 돌아올 때면, 나는 한 순간 문 앞에 서서 열쇠를 꽂기 전에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필요가 없었다. 바틀비는 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혼란스러운 표정을 한 낯선 신사가 나를 찾아와서 나보고 월스트리트 몇 번지에 최근까지 사무실을 갖고 있던 사람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가슴이 방망이질 치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생님!" 하고 자기가 변호사라는 것을 밝힌 그 낯선 신사가 말했다. "당신은 그곳에 남겨두고 온 인물에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필경도 하기를 거부하고 어떤 일도 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나가 달라고 해도 그것까지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것 참 안됐습니다, 선생님" 하고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말했다. "그러나 당신이 언급한 그 사람은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 그 사람은 친척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의 고용인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십니까?"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로서도 그 사람에 대해서 한 가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 사람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전에 필경사로 고용을 했었지만,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해결할 수밖에 없겠군요 --- 실례했습니다, 선생님."
며칠이 지나갔으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가끔 옛날의 정을 생각해서 그곳을 찾아가 불쌍한 바틀비를 만나 보고도 싶었으나 어떤 까닭 모를 공포감이 나를 제지했다.
그 다음 주에도 아무런 소식이 들려 오지 않아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바틀비의 일은 완전히 끝장이 났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을 해 보니까, 사무실 앞에 흥분한 사람이 몇 명 몰려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저 사람이오 --- 이제야 출근하는군!" 하고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소리쳤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지난 번에 혼자서 나를 찾아왔던 변호사였다.
"당장 그 사람을 데려가십시오." 그들 사이에 있던 뚱뚱한 사나이가 나에게로 다가오면서 외쳤다. 그 사람은 월스트리트에서 내가 세들어 있던 사무실 빌딩의 주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 있는 신사분들은 내 건물에 세든 분들인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 B씨께서는......" 하고 변호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 사람을 사무실에서 내쫓았더니, 이번에는 건물 전체를 휘젓고 다니면서 낮에는 계단의 난간에 앉아 있고, 밤에는 현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상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고객들은 사무실을 찾아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슨 끔찍한 변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무슨 조치를 취해 줘야 하겠습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요."
이런 상황의 전개에 당황한 나는 새 사무실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가 버리고 싶었다. 바틀바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 여기 있는 여러분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항변을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 나야말로 그를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몰라서 사무실까지 이리로 옮겨 온 처지인데, 그들은 날더러 끔찍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 시끄럽게 떠들어댈 것이 두려워서(그들 중 한 사람은 은근히 그렇게 협박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한 끝에 나는 한참 만에야 만약 변호사가 그의 사무실에서 그 필경사와 단독으로 만나게 해 준다면, 그날 오후 안으로 그들의 골칫덩어리인 그 사람을 그 건물에서 쫓아내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다고 말했다.
옛날 사무실의 계단을 올라가니까 바틀비가 층계참의 난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바틀비?" 하고 내가 물었다.
"난간에 앉아 있습니다" 하고 그는 점잖게 대답했다.
나는 그를 변호사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변호사는 우리 두 사람을 남겨두고 방을 나갔다.
"바틀비" 하고 나는 조용히 타일렀다. "자네는 우리 사무실에서 해고된 뒤에도 이 건물의 현관에서 잠을 자거나 해서 나에게 커다란 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이제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 길을 택할 수밖에 없네. 자네가 무슨 일을 하든가 무슨 일인가가 자네에게 취해지든가 할 수밖에 없네. 지금 자네가 하고 싶어하는 일은 무엇인가? 다시 어딘가에 취직을 해서 필경 일을 하고 싶은가?"
"싫습니다. 나는 어떤 변화도 갖고 싶지가 않습니다."
"의류 가계의 점원은 어떤가?"
"너무 구속이 많아서 싫습니다. 점원은 딱 질색입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습니다만."
"너무 구속이 많다고?" 하고 나는 외쳤다. "그런데 왜 자네는 항상 그 구석에 틀혀박혀 있었나?"
"점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바틀비는 마치 이런 시시한 문제는 즉각 해결해 버리고 싶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바텐더 직업은 자네에게 맞지 않을까? 그 직업이라면 눈을 그다지 많이 쓰지 않으니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특별한 기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의 예상 외의 다변이 내 힘을 북돋아 주었다. 나는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그렇다면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상인들을 위해 수금을 하는 일은 어떤가? 그 일은 자네의 건강에도 좋을 것일세."
"싫습니다. 그것보다는 다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부잣집 아들의 말동무가 되어서 유럽 여행을 가는 일은 어떤가? --- 그 일이라면 마음에 들겠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일 같지가 않아서 싫습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꼼짝 말고 있게!" 하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소리를 쳤다. 그리고 그와의 분통 터지는 관계를 가져 온 이래 처음으로 진짜로 화를 냈다. "만약 자네가 오늘 밤 이전에 이 건물 안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나도 큰맘 먹고 --- 정말로 나도 큰맘을 먹고 --- 그러니까 --- 내가 여기서 나갈 수밖에 없겠지!"
꼼짝하지 않고 있는 그를 쫓아내려면 어떤 협박이 효과가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앞뒤가 맞지 않는 결론밖에 내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할 말도 없겠다 싶어서 나는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나려고 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 이전에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바틀비" 하고 이렇게 흥분한 상황 아래서 할 수 있는 가장 상냥한 목소리를 내서 나는 말했다. "나하고 함께 집으로 가지 않겠나? --- 우리 사무실이 아니라 본집으로 말일세 --- 그곳에서 천천히 머물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도록 하는 게 어떻겠나? 자아, 가세.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가도록 하세."
"싫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변화도 갖고 싶지가 않습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갑작스럽고 재빠르게 건물을 도망쳐 나와 브로드웨이 쪽을 향해서 월스트리트를 빠져나온 다음, 처음에 눈에 띄는 합승마차에 뛰어올라 추적을 뿌리치고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냉정을 되찾자마자 나는 건물 주인과 세입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그리고 바틀비를 도와주고 잔인한 박해에서 보호해 주려는 나의 욕구와 의무감에 대해서도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이제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고요함 속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양심도 그런 시도에 정당성을 인정해 주었다 --- 실제로 내가 바라고 있던 만큼 그것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화가 난 건물 주인과 약이 바짝 오른 세입자들이 또 다시 뒤쫓아올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업무는 펜치에게 맡겨 두고 며칠 동안 내 사륜마차를 타고 시내의 위쪽과 교외를 드라이브하고 다녔다. 저지 시티와 호보켄까지 갔고, 맨해튼 빌과 아스토리아까지 도피행을 했다. 사실 나는 그 동안 호텔에도 묵지 못하고 마차 속에서 살다시피했다.
다시 사무실에 출근했을 때, 예상했던 대로 건물 주인에게서 온 편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편지를 펴 보았다. 그 편지에는 주인이 경찰에 고발하여 바틀비를 부랑자로 뉴욕시 교도소에 수감하게 했다고 쓰여 있었다. 게다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바틀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교도소에 가서 적절한 사실 진술을 해 달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이 소식은 나에게 두 가지 상충되는 영향을 가져다 주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으나 마지막에는 대충 찬성했다. 건물 주인의 신속하고 과감한 기질은 나 같으면 도저히 마음이 약해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었다. 이와 같은 특이한 상황 아래에서는 결국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불쌍한 필경사는 자신이 뉴욕시 교도소에 수감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도 저항을 하지 않고 창백하고 무감동한 얼굴로 조용히 명령에 따랐다고 한다.
동정심과 호기심에서 몇 사람의 구경꾼들이 그 일행을 따라갔다. 경찰관 하나가 바틀비의 팔을 잡고 앞장을 서고, 말없는 행렬은 떠들썩한 한낮의 큰 거리를 소음과 열기 속을 헤치고 통과해 갔다.
편지를 받은 그날 나는 뉴욕시 교도소, 아니 좀더 적절하게 표현하면 '정의의 전당'으로 찾아갔다. 담당 관리를 만나서 나의 방문 목적을 말하자, 그는 분명히 내가 묘사한 인물이 실제로 그곳에 수감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바틀비는 비록 그 행동을 예측할 수 없이 기괴하기는 하지만 정직한 사람이고, 충분히 동정을 받을 만한 여지가 있는 사람이라고 장담을 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고, 가능한 대로 속박을 가하지 말고 구류해 두었다가 좀더 가벼운 벌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 사실 그것이 어떤 벌인지는 잘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다른 대책이 없으면 사설 구빈원이 그를 맡아야 할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면회를 신청했다.
파렴치한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또 태도도 무척 얌전하고 모든 면에서 무해해 보였기 때문에 교도관들은 교도소 안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도록 허용하고, 특히 풀이 돋아 있는 안뜰은 언제든지 그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뜰의 가장 조용한 곳에 혼자 서 있는 그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높은 벽을 향해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좁은 감방의 창문들이 둘러쳐져 있었고, 나는 그 창문틈으로 살인범이나 절도범들의 눈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틀비!"
"당신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바틀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네를 이곳에 집어넣은 것은 내가 아닐세, 바틀비." 나는 그의 비난하는 듯한 말투에 가슴 아파하며 서둘러 말했다. "자네에게는 이곳은 그다지 나쁜 곳만은 아닐 것일세. 여기 있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보다시피, 이곳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참하기만 한 곳도 아니지 않은가? 보게나, 저기는 하늘도 있고, 여기는 풀도 있고 말일세."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바틀비는 대답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떠났다.
다시 복도로 들어가려니까 덩치가 큰 불그스레한 얼굴의 남자가 앞치마를 걸치고 나에게 다가오더니, 엄지속가락으로 어깨 너머를 가리키고는 이렇게 물었다.
"저 사람은 당신의 친구인가요?"
"그렇소."
"저 사람은 굶어 죽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교도소의 밥을 먹게 하면 됩니다. 정말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굽니까?" 나는 이런 장소에서 그러한 관리답지 않은 말을 하는 사나이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황급히 물었다.
"나는 사식업자요. 이곳에 친구가 수감되어 있는 신사분들은 나를 고용해서 친구에게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지요."
"정말 그렇습니까?" 하고 고개를 돌려서 교도관에게 물어 보았다.
"그렇다면 좋소"라고 말하면서 나는 몇 개의 은화를 사식업자(여기서는 모두 그를 그렇게 부른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저기 있는 내 친구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기를 부탁합니다. 당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식사를 제공해 주고, 될 수 있는 대로 정중하게 대해 주기 바랍니다."
"저를 소개시켜 주시겠습니까?" 하고 사식업자가 말했는데, 자신의 출신이 좋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참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바틀비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나는 승낙했다. 그리고 사식업자에게 그의 이름을 묻고, 그와 함께 바틀비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바틀비, 이 사람은 친구일세. 이 사람이 자네에게 유용한 사람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일세."
"당신의 하인입니다, 나리. 당신의 하인이 되겠습니다" 하고 사식업자가 앞치마를 두른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이곳이 마음에 드시길 바랍니다, 나리. 선선한 방 --- 멋진 뜰 --- 느긋하게 묵으시며 --- 기분 좋게 지내십시오. 오늘 점심에는 무엇을 들고 싶으십니까?"
"오늘 점심은 먹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바틀비는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아마 배탈이 날 것입니다. 점심 같은 것은 먹어 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뜰의 반대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죽음의 벽과 마주보는 자세를 취했다.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사식업자는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사람, 머리가 좀 이상한 것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약간 착란이 온 것 같아요" 하고 나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착란이라고요? 그것을 착란이라고 합니까? 지금 생각해 보니까, 당신 친구는 문서위조범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항상 얼굴이 창백하고 신사인 체하지요. 난 저런 사람들을 보면 불쌍해 죽겠습니다 --- 정말로 측은해 못 견디겠다구요. 당신은 몬로 에드워즈를 아시지요?" 하고 그는 애처로운 듯이 덧붙이고 잠시 말을 중단했다. 그리고는 안 됐다는 듯이 손을 내 어께 위에 얹어 놓았다. "그 사람은 싱싱 교도소에서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몬로를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모릅니다. 나는 어떤 위조범과도 안면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더 이상 여기 머무를 수가 없어요. 내 친구를 잘 부탁합니다. 당신도 손해를 보지는 않을 거요. 그럼 또 만납시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나는 다시 교도소에서 면회허가를 받고 바틀비를 찾아 복도를 돌아다녔으나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 그가 감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고 교도관이 가르쳐 주었다. "아마 안뜰로 산책을 나갔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그쪽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당신은 그 조용한 사나이를 찾고 있습니까?" 하고 또 다른 교도관이 내 옆을 지나가면서 물었다. "저쪽에 누워 있습니다 --- 저쪽 안뜰에서 자고 있더군요. 잠이 든 지 20분 정도밖에 안 되었어요."
안뜰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곳은 보통 죄수들은 접근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놀랄 만큼 두꺼운 주위의 벽들은 그 너머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있었다. 돌로 만든 이집트식 벽이 그 어둠으로 나를 압도했다. 그러나 발밑에서는 부드러운 잔디가 자라나고 있었다. 불멸의 피라미드 속에 어떤 불가사의한 마법에 의 해서 돌들의 틈새로, 새들이 떨어뜨리고 간 잔디의 씨앗이 싹을 틔운 것처럼 보였다.
그 돌벽 밑에 두 무릎을 끌어안고 기묘하게 웅크린 자세로, 머리는 차디찬 돌에 얹고 옆으로 누워 있는 소모된 바틀비의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몸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에게로 다가가서 몸을 구부려 들여다보았다. 그의 침침한 눈이 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무엇인가가 나로 하여금 그를 건드려 보게 했다. 그의 손을 만진 순간, 싸늘한 전율이 내 팔을 지나서 척추를 지나 발끝까지 전해져 내려갔다.
사식업자의 둥근 얼굴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사람의 점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식사를 하지 않을 작정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것일까요?"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소" 하고 나는 대답하고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이런 ---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 자는 것 아닙니까?"
"자고 있소. 역대의 왕들과 고문들과 함께 말이오"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이 기록을 더 이상 계속해 나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불쌍한 바틀비의 매장에 대한 서술 같은 것은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와 작별하기 전에, 이것만은 말해 두고 싶다. 즉, 이 짧은 이야기가 독자의 흥미를 불러 일으켜 바틀비의 정체가 무엇이며 필자가 그를 알기 전까지 어떤 생활을 해 왔느냐에 관해서 알고 싶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더라도, 나는 다만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러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만족시킬 방법이 없다고, 다만 그 필경사가 죽은 지 몇 달 뒤에 내 귀에 들어온 조그만 소문은 여기서 털어놓아야 할지 어떨지 알 수가 없다. 그 소문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나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고, 따라서 그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막연한 보도가 썩 달갑지 않은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얼마간 충족시켜 줄 수도 있을 것이므로 여기에 간략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그 보도는 이런 것이다. 즉, 바틀비는 워싱턴에 있는 '배달불능 우편물과'의 말단 서기로 있었는데 행정부의 인사이동 때 갑자기 감원되었다는 것이다. 이 풍문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볼 때 나는 그것에서 받는 감회를 잘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느낀다. 배달불능 우편물! 그것은 사자(死者)라는 말과 우사한 울림을 갖고 있잖은가? 어떤 인간의 타고난 천성과 불행이 죽음의 절망감에 사로잡히기 쉽다면, 갈 곳 없는 편지의 쉴새없는 분류, 그리고 그것을 소각로에 던져 넣는 일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그의 절망감을 더욱 더 높여 주지 않았겠는가? 그 편지들은 1년에 한번씩 짐수레에 실려서 소각로에 던져 넣어지는 것이다.
때때로 그 창백한 얼굴의 서기는 접혀진 종이 속에서 반지를 한 개 끄집어낸다 --- 그 반지를 끼워야 할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어 가고 있을 것이다. 인정 많은 사람이 바쁘게 보내는 지폐 한 장 --- 그것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이미 먹지도 못하고 굶지도 않는 상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절망에 빠져서 죽은 사람에 대한 용서의 편지, 희망을 잃고 죽은 사람에 대한 희망의 편지, 구원받을 길이 없는 재난에 짓눌려서 죽은 사람에 대한 좋은 소식도, 생명의 사자로서 보내어졌지만, 이 편지들은 죽음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아아, 바틀비여! 아아, 인간이라는 존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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